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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없는 ‘중학개미’…홍콩증시 급락하자 2100억 베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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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홍콩 증시가 세계금융위기 수준까지 급락하자 ‘중학개미’(중국·홍콩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가 역대급 베팅에 나섰다. 이번 달에만 2000억원어치의 홍콩 주식을 사들였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되며 급등락을 반복하는 중국과 홍콩 주식에 몸을 실은 것이다.

3월 항셍지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3월 항셍지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18일 중학개미는 홍콩 주식 1억7297만 달러(약 2102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국내 투자자가 홍콩 주식을 월 단위로 1억 달러 넘게 순매수한 건 지난해 2월(1억5310만 달러·약 1861억원) 이후 13개월 만이다. 특히 홍콩 증시의 대표 지수인 항셍지수가 급등락을 반복한 지난 14~18일 중학개미의 ‘베팅’이 몰렸다.

이 기간 중학개미가 가장 많이 사들인 건 ‘항셍 차이나 엔터프라이즈 인덱스 상장지수펀드(ETF)’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50개로 구성된 홍콩H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으로 5일 만에 1억7350만 달러(약 2109억원)의 자금이 몰리며 해외 종목 순매수 1위를 차지했다. 이번 달 홍콩 주식 전체 순매수 금액을 뛰어넘는 자금이 닷새간 이 ETF에 몰린 셈이다.

이는 같은 기간 테슬라(1억4493만 달러)와 애플(1억1426만 달러), 프로셰어즈울트라프로QQQ ETF(미국 나스닥지수 추종 상품·5947만 달러), 아마존(2688만 달러) 등에 몰린 자금보다도 훨씬 많다. 뿐만 아니다. 중학개미는 이 기간에 알리바바(357만 달러)와 텐센트(247만 달러) 등 중국 빅테크 주식도 사들였다.

최근 5일(14~18일) 해외 순매수 상위 TOP 5.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최근 5일(14~18일) 해외 순매수 상위 TOP 5.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홍콩 주식을 향한 국내 개미의 러브콜은 이례적이다. 최근 홍콩 증시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국내 투자자는 지난해 5월 이후 지난해 9월(5798만 달러)과 올해 1월(2487만 달러)을 빼고 매달 순매도 행진을 이어왔다. 중학개미가 ‘사자’로 돌아선 건 저점 매수 기회라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홍콩 주가는 자유 낙하했다. 이달 들어 2주 만에 25% 가까이 급락하며 지난 15일 홍콩H지수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수준인 6123.94까지 떨어졌다. 항셍지수도 15일까지 18.9% 하락했다.

낙폭이 컸던 만큼 반등세도 거셌다. 항셍지수는 지난 14·15일 이틀간 각각 4.97%, 5.72% 하락한 뒤,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의 자본 시장 안정화 대책 발표가 이후인 지난 16일(9.08%)과 지난 17일(7.04%) 반등에 성공했다. 같은 기간 홍콩H지수도 지난 14·15일에 각각 7.15%, 6.58% 내린 뒤 지난 16·17일 각각 12.5%, 7.52% 급등했다.

하지만 홍콩 증시엔 아직 해소되지 않은 위험이 있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국무원이 지난 16일 이례적으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 금융시장은 변동성의 중심에 선 모습”이라며 “중국 정부가 미국의 압박으로 러시아와 거리 두기에 나설지도 지켜봐야 하고 강한 부양책을 실제로 추진할지도 변수”라고 말했다.

박수현 KB증권 연구원도 “미·중 갈등은 중장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언제라도 미국이 뉴욕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을 압박할 수 있다”며 “미국계 자금이 중국 기업 투자 철회로 이어질 경우 글로벌 투자자 비중이 큰 홍콩 증시의 수급 상황이 불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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