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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前 아나가 꺼낸 '엄마 성 쓰기'…0.2%뿐인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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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설득에 따라 엄마 성씨를 물려주겠다는 협의서를 냈다.”

지난 15일 김수민 전 SBS 아나운서가 결혼 소식과 함께 전한 말이 인터넷에 화제가 되고 있다.  “성평등한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가정이기를 바란다”며 선택한 ‘엄마 성(姓) 따르기’에 관심이 커지면서다.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본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혼인신고서 제출 시에 미리 해당 사항을 결정해서 제출해야 한다. 최서인 기자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본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혼인신고서 제출 시에 미리 해당 사항을 결정해서 제출해야 한다. 최서인 기자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줄 수 있게 된 지는 15년이 다 되어 가지만, ‘모성(母姓)’은 아직 생소한 법률 상식이다. 2005년 이전 우리 민법은 자녀의 성에 대해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한다”고 정하고 있었다. 이후 호주제가 폐지되고 2005년 3월 민법이 개정됐다.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문장 뒤에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조항이 붙은 것이다.

아직은 생소한 ‘엄마 성 따르기’

부부가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혼인신고를 할 때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항목에 ‘예’를 체크하고 별도의 협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18일 기자가 구청 민원실에서 협의서를 떼 봤다. ‘혼인신고서’와 ‘이혼신고서’, ‘출생신고서’ 등은 서류함에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지만, 협의서는 변호표를 받아 창구에서 별도로 요청해야 프린트해 받을 수 있었다.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본을 물려주기로 했다'는 혼인신고서 항목을 체크한 후에도 별도의 협의서가 필요하다. 최서인 기자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본을 물려주기로 했다'는 혼인신고서 항목을 체크한 후에도 별도의 협의서가 필요하다. 최서인 기자

행정적 편의로 봤을 때도 ‘엄마 성 따르기’는 이례적인 일인 셈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지난 2020년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혼인신고 시 자녀가 모(母)의 성·본을 따르게 하겠다고 신청한 건수는 수백 건 수준이었다. 2015년 234건이던 숫자는 소폭 감소하다가 2017년에는 198건으로 떨어졌고 2019년에 379건으로 늘어났다. 5년간 130여건이 늘어난 셈이다. 작년 전체 혼인신고 건수가 19만 3000여 건인 걸 생각하면 모성은 0.2% 수준의 ‘비주류’다.

첫째는 엄마 성 둘째는 아빠 성?…소송 감수해야

자녀를 여러 명 둘 생각이라면 부성과 모성 중에서 양자택일 해야 하는 일은 더 힘들어진다. 협의서에는 ‘태어날 모든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과 본으로 정하기로 협의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18일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설아(왼쪽), 장동현씨 부부가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 18일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설아(왼쪽), 장동현씨 부부가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에 결혼해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준 한 30대 여성은 “여자도 성을 물려줄 수 있고 법적으로 한국이 허용하고 있다는 걸 가정 안에서부터 알려주고 싶었다”며 “다만 한명은 엄마 성, 한명은 아빠 성을 물려줄 수 없고 무조건 한쪽을 따라야 하는 게 불합리한 것 같다. 남성들이 결심을 망설이게 한다”고 했다.

또 “요즘은 혼인신고부터 출산까지의 간격이 길어지다 보니 괴리가 생기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통계청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첫째 아이를 출생하기까지의 결혼 기간은 평균 2.3년으로 매년 점점 길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열린 '엄마의 성·본 쓰기' 성본변경청구 허가 결정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열린 '엄마의 성·본 쓰기' 성본변경청구 허가 결정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혼인신고 시에 모성 따르기 결정을 놓치면 자녀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줄 바꿀 방법은 2가지다. 이혼을 했다가 재혼을 하며 자녀에게 어머니 성을 주겠다고 체크를 하거나 가정법원의 재판을 거쳐야 한다. 김모씨와 정모씨 부부는 지난해 11월 서울가정법원에서 성본변경허가청구를 거친 끝에 딸에게 ‘김정원’이라는 이름을 줄 수 있었다. 이들은 혼인신고 당시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지만, 혼인 8년 만에 아이를 갖게 됐다고 한다.

지난해 2021년 3월에는 이설아·장동현 부부가 781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양성평등을 규정하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엄마 성 따르기의 ‘불편한 진실’은 2008년 새 민법의 시행을 앞두고도 제기됐었다. 2007년 2월 법제처는 “가족관계에서의 남녀평등 이념에 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제시했으나 개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모성이 ‘단서’ 조항에 예외로 규정된 배경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결혼 전후의 생각, 출산 전후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아이를 낳고 출생 신고를 할 때 성·본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또 ‘모성을 선택할 수도 있다’라는 걸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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