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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말로만 통합 부르짖지 말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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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호 35면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드디어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대선을 앞두고 서로 갈라져 싸우는 모습은 보고 듣기 괴로울 정도였다. 크고 작고 심각하고 지저분한 갖가지 의혹 제기가 꼬리를 물었는데, 그 의혹들을 확인하거나 해소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난의 도구로 쓰고자 하는 것으로 보였다. 서로를 향한 저질적 발언이며 멸칭이 난무했다. 매우 길게 느껴졌던 혼탁한 유세가 끝나고 결과가 나오면 조금은 더 이성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찾으려는 노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진 쪽이 나라가 당장 망하기라도 할 듯 슬퍼하는 거야 져서 마음 상했으니 당분간 그러려니 할 수 있겠는데, 유튜브를 운영하는 어떤 만화가가 여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이긴 쪽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본인은 극구 부인하는데도, 당선 발표 직후에 먹은 음식이 당선인을 비웃기 위한 것이라거나 겉옷의 색깔이 여당 후보의 상징색이라거나 하는 이유로 집요한 공격을 받았고, 급기야 ‘좌파’라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대통령의 욕을 공개적으로 하라는 요구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이 무슨 어이없고 시대착오적인 사상검증인가 싶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는 일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욕을 먹을 일도 아니다. 더구나 사상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라니, 인민재판이나 성화밟기가 떠오른다.

대선 후 엉뚱한 사상검증 난무
갈라져서 싸우지 않게 하려면
정치인들이 분위기 조성할 필요
당선인은 국민 모두를 바라봐야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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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이, 누군가가 본인들이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본인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합심하여 다량의 댓글이나 문자를 달거나 보내는 방식으로 공격을 가하는 것은 이번 정권 이후 두드러진 현상으로 보인다. 그 이전에는 권력기관을 두려워했으면 했지 정치적 호불호를 표명했다는 등의 이유로 지지자 다수의 집중 타격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한 적은 없다. 물론 이전의 대통령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자기기에 그다지 익숙하거나 팬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였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으나 더 큰 이유는 해도 된다는 일종의 사인이 주어진 데 있다.

정치인에 대한 소위 ‘팬심’의 발로에서 행하는 일이라지만 지지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개인의 입을 막아 버리겠다며 위력을 보이는 것은 명백히 건강하지 않은 현상이었다. 그런데 팬덤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대통령은 이를 말리거나 자제를 요구하기는커녕 ‘양념’이라고 하여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니 이와 같은 행태가 더 기승을 부리게 됐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양념이 세면 음식이 맛이 없고, 지나치면 먹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욕하면서 배운다고, 이제는 양쪽의 지지자들이 모두 반대쪽 진영의 누군가를 점찍고 집요하게 공격하고 못살게 구는 일들을 당연히 하는 듯하다.

역대급의 비호감 대선이었다는 말들을 한다. 자기가 표를 던진 후보를 좋아하기 때문에 찍은 것이 아니라 싫은 사람이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찍었다는 것이 널리 공유되는 정서다. 이런 이유로 표를 던지든 저런 이유로 표를 던지든 결국 표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후보가 좋아서 지지하는 게 아니라고들 했으니, 다시 말하자면 그 대통령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하니, 이제는 대통령 개인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나머지 비판조차 못 하게 하거나 대통령 및 그 진영에 반대 의견을 내놓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기를 희망한다. 물론 이제 물러나는 쪽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이성적으로는 알듯이, 대통령은 신성불가침의 대상도 아니고 왕도 아니며 ‘지켜줘야 할’ 약자도 아니다. 투표권이 있고 실제로 그 권리를 행사한 국민 중 다수가 단지 5년 동안 국가를 이끌어 나가라고 책임자로 선택한 정치인이자 행정가일 뿐이다. 따라서 비록 본인이 선택한 건 아니더라도 다른 다수의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 및 그가 속한 정치 세력이 사회를 잘 이끌어 나가도록 협조하고, 잘하면 잘하는 부분을 인정하고 지지해 주고, 그렇지 못한다면 못하는 점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일 것이다.

말하자면 시민은 정치인을 무조건적인 애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정치인은 자기를 좋아하는 시민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애정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반대로 시민들이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른 시민을 공격하고 정치인은 자기를 좋아하는 시민들만을 내 편으로 인정하고 그들만 바라보겠다는 듯하다.

정치인에 대한 호오 때문에 시민들이 갈라져서 서로를 극심하게 비난하는 모습이 사라지려면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양쪽 진영 모두 자기를 싫어한 유권자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왜 자신들을 선택하지 않았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당선된 쪽은 더 그렇다. 선거 과정에서는 비록 자기를 찍을 것 같은 유권자들만을 대상으로 그들이 좋아할 만한 발언만을 했다고 하더라도, 선거가 끝나고 당선인이 됐으면 이제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한 사회 전체를 책임지는 것이다. 말로만 외칠 뿐 아니라 이제는 실제로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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