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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실력 없어 쿵쿵, 꼴값 떤다"…검도장·독서실 '잘못된 만남'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5월 17일 전북 전주의 한 건물 4층에 있는 스터디카페 대표가 3층 검도장에 내려와 "소음이 심하다"고 항의하자 검도장 관장이 112에 신고해 경찰관이 출동한 모습. 사진 검도장 CCTV 화면 캡처.

지난해 5월 17일 전북 전주의 한 건물 4층에 있는 스터디카페 대표가 3층 검도장에 내려와 "소음이 심하다"고 항의하자 검도장 관장이 112에 신고해 경찰관이 출동한 모습. 사진 검도장 CCTV 화면 캡처.

경찰 "업무방해 혐의 보완 수사 중" 

전북 전주의 한 건물 위아래층에 있는 스터디카페(독서실)와 검도장 측이 층간 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다 법적 공방으로 번졌다.

스터디카페 측은 "기합과 구령 등 검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발로 쿵쿵거리는 진동 때문에 바로 위층에 있는 학습 공간 이용자들이 환불을 요청하는 등 영업 피해가 막심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반면 검도장 측은 "추가 비용을 들여 방음 공사를 했는데도 소음·진동 문제가 여전한 건 건물 구조 탓인데도 스터디카페 사장이 시도때도 없이 찾아와 항의하는 건 명백한 수업 방해"라고 맞서고 있다.

15일 전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전주 완산경찰서는 검도장 관장 A씨(30)가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스터디카페 대표 B씨(33·여)에 대해 보완 수사 중이다. 경찰은 지난해 7월 B씨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 결정을 하고 검찰에 송치하지 않았지만, A씨는 이의를 제기했다.

A씨 측은 B씨에 대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 적용도 검토해 달라고 경찰에 요청한 상태다. 양측은 서로를 '가해자'라고 부르며 상대방 때문에 "영업상 손실을 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쩌다가 두 사람은 앙숙이 됐을까.

첫 만남은 나쁘지 않았다. A씨는 지난해 2월 검도장을 차리기 위해 전주의 한 신축 상가 건물 3층 내 한 공간을 빌렸다. A씨는 인테리어 공사 업체 측에 "비용을 지급하겠으니 창틀 방음에 특히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다. 검도장 바로 위층인 4층에 먼저 입주해 있던 스터디카페 대표 B씨가 "소음에 민감한 업종이니 신경 좀 써 달라"고 해서다. A씨는 B씨에게 소음이 발생하는 시간과 공사 일정 등을 문자나 전화로 알려줬다.

지난해 5월 17일 전북 전주의 한 건물 4층에 있는 스터디카페 대표가 3층 검도장 앞 복도에서 "소음이 심하다"며 검도장 관장에게 항의하는 모습. 사진 검도장 건물 CCTV 화면 캡처.

지난해 5월 17일 전북 전주의 한 건물 4층에 있는 스터디카페 대표가 3층 검도장 앞 복도에서 "소음이 심하다"며 검도장 관장에게 항의하는 모습. 사진 검도장 건물 CCTV 화면 캡처.

검도장 "상식 넘는 정숙 요구"…스터디카페 "소음"

양측 갈등은 지난해 4월 5일 A씨가 검도장에서 첫 수업을 시작한 날 불거졌다. 수업 시작 10여 분 만에 B씨가 검도장에 찾아와 "소음이 심하다"고 항의하면서다.

이후 B씨는 5월 21일까지 16차례에 걸쳐 검도장에 내려와 "제발 조용히 좀 해달라"고 소리치며 "상식이 없는 사람이다",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교육을 하냐" 등의 폭언을 퍼붓거나 관원들과 언쟁을 했다는 게 A씨 주장이다.

B씨의 항의는 오후 5시30분과 8시50분 사이 3~40분간 이뤄졌다고 한다. A씨는 "검도장 출입문을 잠그면 B씨가 문을 흔들거나 휴대전화로 운동 장면을 촬영했다"며 "40분간 몸으로 검도장 출입문을 막기도 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경찰에 세 차례 신고했다.

A씨는 "B씨와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 방음 공사까지 했지만, B씨의 막무가내식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수업이 계속 끊기다 보니 '스트레스를 풀려고 검도를 시작했는데 스터디카페 사장 때문에 외려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검도를 쉬겠다는 관원들도 나왔다고 한다.

층간소음 주된 발생 원인은 ‘발소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층간소음 주된 발생 원인은 ‘발소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실력 없으니 소리 나지"…檢 "무례한 표현…모욕은 아냐"

이에 A씨는 지난해 5월 "자신이 먼저 입점했다는 이유만으로 상식을 넘는 수준의 정숙을 요구해 검도장 운영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며 B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후 두 사람은 또다시 충돌했다. B씨가 경찰에서 피고소인 조사를 받고 난 뒤였다.

B씨는 지난해 6월 9일 오후 9시5분쯤 검도장 현관 앞 복도에서 A씨에게 "한글을 못 읽으세요?", "선생님이 실력이 없으니까 소리가 나는 거겠죠", "꼴값 떨지 마시라니깐요" 등 고성을 지르며 따졌다.

A씨는 다시 모욕 혐의로 B씨를 고소했으나, 경찰과 검찰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B씨가 A씨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나 화나는 감정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A씨를 다소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하고 저속한 표현을 썼다고 볼 수 있겠으나, 이를 넘어 A씨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층간소음 민원 느는데, 기준 초과는 ‘극소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층간소음 민원 느는데, 기준 초과는 ‘극소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법원 "지나친 제약" 기각

A씨는 B씨를 상대로 법원에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A씨 의사에 반해 검도장에 접근해서는 안 되고 ▶검도장 소음과 관련해 A씨와 관원들에게 면담을 강요하거나, 전화를 걸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업무를 방해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1회 때마다 3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으로다.

이에 대해 B씨 측은 재판부에 낸 답변서를 통해 "A씨와 관원들에게 면담 등을 강요한 적이 없다"며 "검도장의 잦은 소음으로 스터디카페 이용자들의 항의가 이어져 부득이하게 소음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법원은 B씨 손을 들어줬다. 전주지법 민사21부(부장 고상교)는 지난해 12월 22일 "검도장에서 발생한 소음과 진동이 B씨가 운영하는 스터디카페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인되는 상황에서, B씨로 하여금 소음 발생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A씨에게 면담을 요구하거나 연락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B씨의 행동에 지나친 제약이 될 수 있다"며 A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아울러 "B씨가 검도장에 수차례 찾아간 것은 사실이나, 체류 시간이 길다고 보기 어렵고, B씨의 행위는 오로지 A씨의 사생활 내지 업무를 방해할 목적이 아닌 항의 수준으로 보이며, 사회 통념상 상당성을 결여하거나 위법한 정도에 이른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숫자로 본 2020년 층간소음 갈등.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숫자로 본 2020년 층간소음 갈등.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갈등 속출하는데 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지적도 

재판부는 "A씨는 방음시설을 완비했다고 주장하나 스터디카페 이용자들이 '검도관의 진동이나 소음으로 인해 시끄러워 공부를 하지 못하겠다'는 내용으로 B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소명된다"며 "A씨가 소음과 진동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검도장 등 체육도장업은 소음 방지에 적합한 방음시설을 해 소리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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