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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때, 아이 낳을때, 키울때···때마다 '내 집 걱정' 없게 해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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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는 5월 임기를 시작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인구 절벽’ 문제는 위기를 넘어 현실이 된다. 임기 중반인 2025년에는 한국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도 이때 처음 70% 아래로 감소한다. 학령인구와 병역의무자 수는 감소세가 가팔라진다. 지금처럼 덜 태어나고 더 늙어가는 인구 구조가 고착화하면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인구 절벽 해결을 정책 순위 중 가장 위로 올려야 한다고 주문하는 배경이다.

윤석열 당선인 인구정책 관련 발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윤석열 당선인 인구정책 관련 발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14일 윤 당선인의 공약집과 대선 기간 주요 발언 등을 종합하면 차기 정부의 인구 문제 해법은 일자리 확대와 지역균형발전, 청년층의 주거 불안 해소 등이다. ▶0~12개월 아이 양육 부모에 월 100만원 지급 ▶부모의 육아휴직 및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 ▶난임 치료비 지원 및 휴가 기간 확대 등의 지원책도 제시했다.

윤 당선인은 “보육시설을 확장해 1년에 100만원 정도만 받고 식사ㆍ간식을 포함해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6시 반까지 탁아ㆍ육아를 전부 국가가 책임져줘야 한다”며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청년들이 지역에서 일자리ㆍ교육ㆍ문화ㆍ의료에 동등한 기회를 누리면서 지방에 자리를 잡아야 자녀 출산이 더 용이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접근한 것에 대해 리셋코리아 인구분과 위원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서울대 인구학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리셋코리아 인구분과장)는 "서울과 수도권에 청년 인구가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극심한 경쟁이 벌어졌고, 내집ㆍ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하는 현실을 주목했다"며 "그간 정부는 저출산 원인을 보육 복지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보다 한두걸음 더 나아가 인구 문제에 접근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구체성이 떨어지고, 보육지원 등은 과거 정부와 크게 차별화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차기 정부에서는 내용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게 리셋코리아 인구분과 위원들의 조언이다.

학령인구수 변화 예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학령인구수 변화 예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우선 각종 수당을 많이 쥐여 준다고 젊은이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젊은이들이 지금보다 일자리를 갖기 쉽고, 주거 비용을 줄이고, 아이를 편하게 키울 환경ㆍ시스템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중에서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할 것은 ‘내집 마련’ 문제다.

이성용 한국인구학회장(강남대 교수)는 “2000년~2003년 부동산 가격이 폭발적으로 오르던 시기에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초저출산의 기준선인 1.3까지 떨어졌고, 부동산이 과열 양상을 보인 2017년부터 지금은 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졌다”며 “집이라는 것이 경제적 독립의 기본 단위인데, 이걸 구하는 게 어렵다 보니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못 낳는 것”이라고 짚었다.

병역의무자 변화 예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병역의무자 변화 예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이 독립하고, 돈을 모으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아이들이 점점 커가는 생애 주기 스케줄에 따라 주거 지원을 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내놓은 정책을 이를 맞춰주지 못했다”며 “예컨대 혼인을 할 때, 아이를 낳을 때, 아이 수가 늘어날 때마다 대출ㆍ청약ㆍ임대주택 등의 지원을 단계적으로 확대 경신토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윤 당선인이 밝힌 지역균형발전도 지역 산업의 회생과 생태계 변화까지 고려해야 한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지역 산업 회생으로 남성 일자리가 늘게 되면, 젊은 여성이 만족하는 경제ㆍ사회ㆍ문화 생태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며 "그래야 현지에서 부부들이 정착하고 미혼 남녀가 맺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인구 감소는 이미 정해진 미래다. 30년 이후의 출생아 수는 최근 태어난 여자아이의 수로 결정된다는 점에서다. 이에 이미 진행된 저출산에 적응하고, 인구 감소가 만들어 낼 사회를 예측하며, 이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인구감소 ‘연착륙’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 새로 고령층에 진입하는 세대의 생산력과 소비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인구 절벽의 충격을 완화할 대안으로 꼽힌다.

김영선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노인학과 교수는 “차기 정부 임기에 베이비붐 세대 대부분이 노년기에 진입하는데 이들은 과거와 달리 건강하고, 재력이 있으며, 지식도 풍부한 장년층들”이라며 “이들을 겨냥한 고령친화기술ㆍ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면 신산업 수익 창출과 일자리 창출, 돌봄 인력 부족 문제 등에 대응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년 연장이 생산가능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메우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임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다만 청년-장년 세대 간 갈등을 부르고 기업의 부담을 늘릴 수 있는 만큼 청년 취업난 해소, 노동시장 유연화 등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

각 부처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장기 로드맵도 마련해야 한다. 이상림 연구위원은 “이미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교육부와 2050년도에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보건복지부는 인구 정책에 대응하는 타임 스케줄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지금 정부 조직 구조로는 부처 간 조율에 한계가 있다”며 “인구 문제를 국정 과제 전면에 내세워 전 부처가 협력해 대책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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