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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봉준호 저작권료 받는데, ‘오겜’ 황동혁 못받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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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컬처 이슈 

봉준호 감독의 한미합작 영화 ‘옥자’(2017). [사진 넷플릭스]

봉준호 감독의 한미합작 영화 ‘옥자’(2017). [사진 넷플릭스]

“‘옥자’(2017)의 경우 넷플릭스와 창작자 조합이 맺은 협약에 따라 일정한 퍼센트, 이런 식으로 (저작권료가) 계속 미국에서 송금이 돼서 오거든요.”(봉준호)

“(한국에서도) 방송작가뿐 아니라 음악 만드는 분들도 다 그런 혜택을 받잖아요.”(박찬욱)

지난달 24일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온라인으로 개최한 연례 시상식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봉준호·박찬욱 감독이 했던 발언의 일부다. 봉 감독이 공동 각본자인 할리우드 영화 ‘옥자’는 넷플릭스가 권리를 독점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지만, 창작자로서 별도 저작권료를 넷플릭스에서 받아왔다는 얘기였다. 똑같은 넷플릭스 콘텐트인데도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각본·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흥행 수익을 나눠 받지 못한 것과 다르다.

봉준호

봉준호

봉 감독이 넷플릭스에서 받은 저작권료의 공식 명칭은 ‘재상영분배금’이다. 한국에서도 대본을 집필한 방송작가에게 본방송 원고료는 물론 재방·삼방 등에 대한 이용료까지 추가로 지급하는 것과 유사하다. 봉 감독이 가입된 할리우드 노동조합들이 소속 창작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OTT 등과 지속해서 협상을 벌여온 결과다.

반면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어떤 할리우드 창작자 조합에도 가입하지 않아 흥행에 따른 추가 수입을 받지 못했다.

EU ‘디지털 단일시장 저작권 지침’ 발효 

황동혁 감독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 모두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지만 저작권 보장 방식은 달랐다. [사진 넷플릭스]

황동혁 감독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 모두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지만 저작권 보장 방식은 달랐다. [사진 넷플릭스]

창작자 권리는 유럽 등에서도 국제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다. 2020년 김혜은 변호사의 ‘영화 창작자들을 위한 정당한 보상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2019년 디지털 유통환경 변화에 발맞춰 저작자와 실연자 권리를 강화하는 ‘디지털 단일시장 저작권 지침’을 발효했다. EU 모든 회원국이 2년 내 국내법에 반영·이행토록 했다. 프랑스·독일·스페인·칠레 등은 이와 별도로 어떤 형태로든 영화가 상영되면 창작자에게 수익 일부가 돌아가도록 법으로 정했다.

이에 비해 한국 영화계는 창작자 권리 보호에 취약한 편이다. 지난해 9월 영화진흥위원회의 ‘포스트코로나 영화정책 기초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주요 영화산업국과 국내 방송업계 등에서 작가 등 저작자들의 당연한 권리인 영상물의 부가적 사용에 대한 비례보상 저작권료 혹은 로열티 권리를 국내 영화 창작자들은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DGK 저작권위원회를 맡은 이윤정 감독이 최근 한 기고문에서 “글로벌 사업체가 악덕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법이 후진적이라서 창작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DGK는 봉준호·박찬욱·황동혁·나홍진·강제규 등 스타 감독부터 신인까지 400여 명이 소속됐다.

황동혁

황동혁

한국에선 영상저작물에 관한 특례(저작권법 100조)에 따라 특약이 없는 한 영상의 창작자는 저작권을 제작사에 양도한 것으로 추정한다. 김혜은 변호사는 이 특례는 “(대개 공동저작물인 영상저작물의) 유통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영화제작자는 저작권 일부 또는 전부를 다시 투자배급사에 양도하는 것이 그간 영화업계의 관행이었다”라고 설명한다. 황동혁 감독의 경우 할리우드 창작자 조합에 가입돼 있지 않기도 하지만, 영상저작물 특례를 근거로 한국 제작사가 저작물 수익을 모두 넘기는 ‘매절’ 계약을 한 것으로 인정돼 수익 재분배 통로가 막혔다는 것이다.

DGK에 따르면 저작권법은 1987년 개정 뒤 큰 변화가 없었다. 그사이 한국 영화 산업은 극장 매출이 2018년 세계 5위에 이를 만큼 규모가 커지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졌다. 극장과 시스템이 전혀 다른 디지털 시장도 급속도로 확대됐다. 이런 시장 변화에 따라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의 하청기지로 전락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국내 영화사들의 권리를 강화하고 토종 OTT를 육성해야 한다는 정책적 논의는 있었다. 하지만 창작자들의 저작권 보장은 관심 밖이었다는 게 영화감독들의 시각이다.

이윤정 감독은 “제작자 이익을 보장하면 자연스럽게 작가·감독한테 수익이 흘러 들어갈 것이란 식의 관점에서 영화 정책이 추진돼왔는데, 실제론 그런 구조가 아니다”며 “제작자와 창작자의 수입 구조는 엄연히 다른 현실을 인정하고 ‘안전망’을 설치해 달라는 게 우리 주장”이라고 말했다.

35년째 그대로 저작권법, 현실 반영 못해 

DGK는 2018년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CISAC)의 권고를 토대로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여기엔 ▶감독과 작가가 영상물의 저작자라는 점 ▶저작권은 포기하거나 양도할 수 없는 공정한 재산권이라는 점 ▶저작물 사용에 대해 소비자가 지불한 사용료의 일정 비율을 비례보상액(저작권료)으로 징수하는 단체의 활동을 보장하는 내용 등을 담을 예정이다. 이를 위해선 제작사가 창작자로부터 저작권 일체를 양도받는 것으로 여겨져 온 그간의 계약 관행을 손보는 논의 등이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작자는 “제작사가 저작권을 인계받을 수 없다면 세일즈 계약을 체결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면서 “할리우드 조합들처럼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조합원 작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조합 차원에서 어디까지 관리해줄 건지 의무도 제공해야 균형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측은 “구체적으로 요구 사항이 발생하면 귀 기울여 듣고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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