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댕기머리와 찢어진 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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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호 30면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지난 2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제28회 미국배우조합 시상식(SAG)’에서 모델 겸 배우 정호연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정호연은 비영어권 드라마 배우가 SAG에서 연기상을 받는 최초의 배우로 그리고 ‘한국적인 패션’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른바 ‘댕기머리’ 패션이다. 정호연의 시상식 드레스는 그가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루이 비통 것으로 검은 바탕에 은빛 자수를 놓아 한국 자개 공예를 연상시켰다. 사전 피팅 시 정호연은 드레스에 잘 어울리는 머리장식으로 루이 비통 측에 직접 댕기 제작을 요청했다고 한다.

글로벌 패션 매체들은 5대5 가르마에 긴 머리를 촘촘히 땋고 댕기를 묶은 정호연의 헤어스타일에 호평을 보냈다. “정호연, 한국식 땋은 머리로 SAG 시상식 빛내다”(미 패션전문매체 WWD), “한국의 전통적인 댕기머리 리본에서 영감 얻은 맞춤형 장신구로 아름다움이 격상됐다”(영국 패션지 글래머), “한국에서 수세기 동안 땋은 머리 장식에 사용했던 전통 액세서리 댕기를 이용해 정호연은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화려함과 한국 유산의 의미 있는 결합을 보여줬다”(미국 패션지 보그)고 극찬했다.

스타들의 한복 패션에 평가 엇갈려
한복 세계화, 모던·전통 함께 가야

국내 반응 역시 호평 일색이었는데, 한편에서 생각지도 못한 의견들이 나왔다. “그냥 우리나라에서처럼 자연스러운 화장을 했으면 합니다. 외국인 취향에 맞춘 듯한 화장과 머리 스타일은 아닌 듯. 누가 요즘 저런 스타일을 하는지. 60~70년대 서양인이 동양인 여자를 바라보는 스타일”이라는 댓글이다. 지인 중 한 명은 “5대5 가르마를 타고 머리를 묶으면 눈이 뒤로 당겨져 서양에서 동양인을 놀릴 때의 찢어진 눈이 된다”며 “윤여정 배우가 오스카 시상식에 섰을 때 그녀의 패션은 서양인의 기대에 맞추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 줬고 그래서 더욱 당당하고 아름다웠다”고 했다.

이미 세계적인 톱 모델로 다양한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체험해 본 정호연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빛낼 수 있는 옷차림을 몰랐거나 포기했을 리 없다. 다만 ‘세계무대에선 한국적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던 건 아닐까 우려도 된다. K컬처가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지금, 우리는 스타들에게 ‘한국적인 아름다움’까지 소개해야 한다고 은연중에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블랙 핑크와 BTS가 한복을 입고 세계무대에 섰을 때 “기생 옷 같다” “선비의 도포는 그렇게 풀어헤치고 입는 옷이 아니다”라고 악평을 퍼부으면서 말이다.

실제로 요즘 젊은 스타들이 입는 한복은 전통 한복과는 차이가 있는 모던 한복이다. 정호연은 서양 드레스와 전통 댕기를 믹스매치했다. 언제까지 전통 한복만 고집하며 한복의 글로벌화를 바랄 건가. 젊은 스타들의 노력을 문화 사대주의라 폄하할 필요도 없다.

K푸드를 보더라도 그렇다. 모던 한식과 전통 한식이 함께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 ‘아토믹스’의 박정현 셰프 등 서양요리를 전공한 젊은 셰프들이 사찰음식, 반가음식, 궁중음식을 따로 배워 현대와 전통을 접목한 모던 한식을 세계에 선보이고 있다. 이제 외국인 미식가와 셰프들은 발효·저장음식 등 한국 전통 음식의 깊이와 철학을 궁금해한다. 최근 발표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Asia’s 50 Best Restaurants) 2022’에서 사찰음식 대가인 정관 스님이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 행사의 한·중 지역 부의장인 최정윤(샘표 우리맛연구소 팀장) 셰프는 “모던 한식이 전 세계인을 사로잡는 다리 역할을 잘해줬다”며 “한식의 인기가 오래 지속하려면 이제 깊이 있는 문화가 뒷받침돼야 하고 그런 점에서 정관 스님의 글로벌 수상은 의미가 크다”고 했다.

한복이 가야 할 길도 다르지 않다. 모던 한복이면 어떤가. 호기심은 깊이 있는 관심과 인연을 만드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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