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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法 "비정규직 부당해고" 맞다는데…항소한다는 文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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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정부기관(국방홍보원)이 고용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부당해고’ 판정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냈지만, 최근 서울행정법원이 “부당해고가 맞다”며 청구를 기각한 것으로 8일 나타났다.

피해자는 해고 이후6500여만원의 체불 임금조차 돌려받지 못한 채 3년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상황. 정부는 이런 사실을 언론 보도로 인지하고 있지만,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중앙일보 2021년 7월 27일자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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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의 주인공은 4년째 자원봉사로 천안함 생존 장병의 활동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는 염현철(35) 천안함전우회 영상감독. 그는 국방부 직할 국방홍보원에서 지난 2010년부터 8년간 고정 급여를 받으며 음향감독으로 일했다.

국방부 직할 국방홍보원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염현철 천안함전우회 영상감독은 정부를 상대로 부당 해고 및 체불 임금과 관련한 법정 다툼을 3년 넘게 벌이고 있다. 장진영 기자

국방부 직할 국방홍보원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염현철 천안함전우회 영상감독은 정부를 상대로 부당 해고 및 체불 임금과 관련한 법정 다툼을 3년 넘게 벌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염 감독이 국방홍보원 근무 당시 직접 기획하고 연출ㆍ촬영ㆍ편집까지 도맡았던 〈PLUG IN DMZ〉란 13부작 미니 다큐(편당 4~5분)는 정부 안팎에서 호평을 받았다. 일부 영상물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에 홍보 영상으로 게재됐다.

그런데 순서상 들어가야 할 탈북 여성의 인터뷰 영상이 빠지고, 외부 업체가 따로 제작한 영상이 정상회담 홈페이지에 올랐다. 염 감독은 “내가 만든 영상에서 탈북 여성이 북한 내 인권을 언급한 게 문제가 된 것으로 들었다”며 “내 작품이 아닌 ‘짝퉁’ 영상을 함께 올려 너무 불쾌한 나머지 영상을 삭제하지 않으면 법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항의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갈등도 있었다. 염 감독의 〈PLUG IN DMZ〉가 2018년 케이블TV방송협회의 ‘케이블 방송대상 대상’(기획 부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뉴미디어 부문) 등을 잇달아 수상했지만, 국방홍보원 측이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수상자 명단에서 염 감독을 빼버린 것이다.

염 감독은 “당시 제작에 참여하지도 않은 공무원이 수상하는 것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지속해서 항의하는 가운데 국방홍보원 측이 더 낮은 처우의 프리랜서 계약직으로 고용 형태를 바꾸자고 요구했고, 버틸 대로 버티다가 이를 수용하자 3개월 뒤 근무 태도 불량 등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며 일방적으로 해고했다”고 말했다.

2018년 10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염현철 감독이 제작한 〈PLUG IN DMZ〉에 대해 그해 8월 방영분을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뉴미디어 부문)으로 수상했다. 그런데 상패에는 연출자 이름이 오모씨로 기재돼 있다. 염 감독은 ″국방홍보원 측이 수상 과정에서 편성PD를 연출자로 둔갑시켰다″고 말했다. 국방TV 화면 캡처

2018년 10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염현철 감독이 제작한 〈PLUG IN DMZ〉에 대해 그해 8월 방영분을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뉴미디어 부문)으로 수상했다. 그런데 상패에는 연출자 이름이 오모씨로 기재돼 있다. 염 감독은 ″국방홍보원 측이 수상 과정에서 편성PD를 연출자로 둔갑시켰다″고 말했다. 국방TV 화면 캡처

이후 그는 부당해고 진정 및 임금 체불 소송을 냈다. 그 결과 서울서부지방노동위원회(2019년 7월)와 중앙노동위원회(같은 해 10월)가 잇달아 “부당해고가 맞다”며 염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또 서울서부지방법원(같은 해 11월)은 체불 임금 65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국방부와 국방홍보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급기야 서울행정법원이 지난달 17일 이를 기각하고 소송비용까지 정부가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한마디로 2년 4개월간 시간만 끌었지 같은 결론이 난 셈이다. 게다가 행정소송이 지연되면서 임금 체불 소송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이번 행정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국방부는 불복 입장을 거듭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법원이 취하고 있는 입장과 부합하는지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어 항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염현철 천안함전우회 영상감독이 국방부 청사 앞에서 국방홍보원의 부당 해고를 호소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염현철

염현철 천안함전우회 영상감독이 국방부 청사 앞에서 국방홍보원의 부당 해고를 호소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염현철

정부 안팎에선 이같은 국방부 태도를 두고 “정부가 비정규직을 부당해고했다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판결이다 보니, 다음 정권으로 떠넘기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염 감독은 “2심에 대법원까지 간다면 또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리겠느냐”며 “체불 임금의 경우 연간 이자가 1300만원(법정 최고금리 20% 적용) 정도인데, 결국 국민이 낸 세금만 더 축내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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