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단독]"탈북민 '北 자유' 말하니…정상회담 홍보용서 빼더라"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05:00

업데이트 2021.07.26 09:56

“북한 주민의 자유를 언급한 탈북민 인터뷰를 담으니 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더라.”


3년째 무임 봉사로 천안함 생존 장병의 활동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는 염현철(34) 천안함전우회 영상감독은 국방부 직할 국방홍보원 근무 시절에 겪은 일화를 이렇게 밝혔다. 그가 기획부터 연출ㆍ촬영ㆍ편집까지 도맡았던 〈PLUG IN DMZ〉란 13부작 미니 다큐(편당 4~5분)와 관련해서다.

2018 남북정상회담 앞두고 홍보
탈북민 인터뷰 다룬 다큐만 빼
애국가 담으려니 "위서 싫어한다"

염현철 천안함전우회 영상감독이 지난 7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염 감독은 국방홍보원 근무 당시 제작했던 13부작 미니 다큐 〈PLUG IN DMZ〉 가운데 4편인 '고향의 봄'이 2018년 남북정상회담 홍보용 홈페이지에서 빠진 이유와 관련해 "북한 주민의 자유에 대해 언급한 탈북민 인터뷰를 담았더니 올리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대신 외부 업체가 만든 다른 영상물을 올려 삭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장진영 기자

염현철 천안함전우회 영상감독이 지난 7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염 감독은 국방홍보원 근무 당시 제작했던 13부작 미니 다큐 〈PLUG IN DMZ〉 가운데 4편인 '고향의 봄'이 2018년 남북정상회담 홍보용 홈페이지에서 빠진 이유와 관련해 "북한 주민의 자유에 대해 언급한 탈북민 인터뷰를 담았더니 올리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대신 외부 업체가 만든 다른 영상물을 올려 삭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장진영 기자

“유독 탈북민 인터뷰만 빠졌다”

비무장지대(DMZ)라는 공간을 통해 전쟁과 분단의 아픔, 통일에 대한 염원을 그린 이 작품은 정부 안팎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중 초기작들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https://koreasummit.kr/Newsroom/News/56)에 홍보 영상으로 게재됐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당시까지 국방TV에서 방영한 영상들을 올린 것이었다. 그런데 유독 탈북민 인터뷰를 담은 4편인 ‘고향의 봄’만 빠졌다.

“한 젊은 탈북 여성이 생각하는 분단의 현실을 주제로 한 영상이었다. 내용 중에 그 여성이 ‘북한에선 자유라는 말은 그저 단어에 지나지 않았다. 당신 가족이 그 땅에 있다면 어떤 심정이겠나’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런 내용을 위에서 빼라고 했지만 안 뺐다. 그랬더니 그 편만 정상회담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더라.”

 2018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염현철 감독이 만든 〈PLUG IN DMZ〉 초기작들을 홍보용으로 게재했다. 그런데 당시 방영된 4편 '고향의 봄'만 올리지 않고 외부 업체가 만든 다른 영상물로 대체했다. 사진은 4편에서 탈북 여성이 북한에서 생활할 당시 '자유'라는 단어에 대해 느꼈던 감정을 밝히는 부분이다. ['고향의 봄' 화면 캡처]

2018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염현철 감독이 만든 〈PLUG IN DMZ〉 초기작들을 홍보용으로 게재했다. 그런데 당시 방영된 4편 '고향의 봄'만 올리지 않고 외부 업체가 만든 다른 영상물로 대체했다. 사진은 4편에서 탈북 여성이 북한에서 생활할 당시 '자유'라는 단어에 대해 느꼈던 감정을 밝히는 부분이다. ['고향의 봄' 화면 캡처]

당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염 감독이 아닌 외부 업체가 따로 만든 영상을 화면 상단에 1편으로 노출시켰다. 실제 국방TV에서 1~3편으로 방영한 영상들은 2~4편으로 바뀐 채였다.

“제목과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컨셉만 빌려서 짝퉁을 만들었는데 정부 입맛에 맞춰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갑자기 가짜 배우가 나타난 느낌이었다. 내가 공들여 만든 자식 같은 작품들과 같이 있다는 게 너무 불쾌하고 화가 나 삭제하지 않으면 법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염 감독의 항의 이후 해당 영상물은 정상회담 홈페이지에서 내린 상태다. 염 감독은 “다큐에서 분단 현실을 얘기하면서 늘 ‘자유와 함께 하는 평화’라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했다”며 “그런데 그 영상물에는 자유는 없고 평화만 강조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애국가 쓰니 “위에서 싫어한다”

염 감독이 겪은 일은 이뿐만 아니다. 마지막 편인 ‘편지’의 경우 다른 편들과 달리 국방TV가 방영하고도 공식 유튜브 계정에 올리지 않고 있다. 해당 편은 6ㆍ25 전쟁 당시 후퇴하던 인민군들이 양민을 학살했던 장소인 강원도 철원 수도국지(水道局地ㆍ일제시대 강원도 첫 상수도 시설 유적)를 배경으로 촬영했다.

“마무리 짓는 편인 만큼 평소 생각하던 메시지를 꼭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희생된 분들 중 다수가 반공 의식이 투철했던 여성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그런 느낌을 살리려 여성 현대무용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여기에 애국가를 배경음악으로 넣겠다고 했더니 난리가 났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고 ‘위에서 싫어한다’며 계속 빼자고 하더라. 우여곡절 끝에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애국가를 겨우 넣을 수 있었다.”

염현철 감독이 만든 13부작 미니 다큐 〈PLUG IN DMZ〉의 마지막 편인 '편지'의 촬영 장소는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이 양민을 학살한 강원도 철원 수도국지(일제시대 만든 상수도시설)다. 염 감독은 이 영상에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애국가'를 배경음악으로 넣었다. 국방TV 유튜브 공식 계정에는 다른 편과 달리 현재 해당 편만 빠져 있다. ['편지' 화면 캡처]

염현철 감독이 만든 13부작 미니 다큐 〈PLUG IN DMZ〉의 마지막 편인 '편지'의 촬영 장소는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이 양민을 학살한 강원도 철원 수도국지(일제시대 만든 상수도시설)다. 염 감독은 이 영상에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애국가'를 배경음악으로 넣었다. 국방TV 유튜브 공식 계정에는 다른 편과 달리 현재 해당 편만 빠져 있다. ['편지' 화면 캡처]

비정규직이라 수상서 배제  

〈PLUG IN DMZ〉는 2018년에 케이블TV방송협회가 주관하는 ‘케이블 방송대상 대상’(기획 부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뉴미디어 부문) 등을 연거푸 받았다. 하지만 수상자 명단에 염 감독은 없었다. 비정규직 신분이란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실제로 다큐 제작에 참여하지 않은 공무원들이 상들을 받았다. 그중 한 분은 미안했는지 ‘내가 왜 상을 받는지 모르겠다. 시상식에 가라니 하는 수 없이 간다’고 직접 하소연을 하더라. 게다가 첫 편 제작 당시엔 국방홍보원에 있지도 않은 사람이 수상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한술 더 떠 그 분에게는 수상작을 만들어 홍보원을 빛낸 ‘우수 직원’이라며 국방부 장관 명의의 표창까지 주더라.”

2018년 10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염현철 감독이 제작한 〈PLUG IN DMZ〉에 대해 그해 8월 방영분을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뉴미디어 부문)으로 수상했다. 그런데 상패에는 연출자 이름이 오모씨로 기재돼 있다. 염 감독은 ″국방홍보원 측이 수상 과정에서 편성PD를 연출자로 둔갑시켰다″고 말했다. [국방TV 화면 캡처]

2018년 10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염현철 감독이 제작한 〈PLUG IN DMZ〉에 대해 그해 8월 방영분을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뉴미디어 부문)으로 수상했다. 그런데 상패에는 연출자 이름이 오모씨로 기재돼 있다. 염 감독은 ″국방홍보원 측이 수상 과정에서 편성PD를 연출자로 둔갑시켰다″고 말했다. [국방TV 화면 캡처]

국방홍보원은 염 감독의 수상 배제와 관련해 중앙일보에 “모든 제작진이 수상에 참여하기는 어려워 프로그램 책임자가 대표로 수상했다”며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수상 당시엔 국방홍보원이 상패를 별도 제작해 수상의 의미를 공유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염 감독은 “당시 다른 수상작들의 경우 연출자들이 수상자에 포함된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며 “내가 그런 사실을 문제 제기하자 이후 홍보원에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상을 받을 때 비정규직 제작진도 참여시켰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홍보원 말대로 어느 날 사제 트로피를 갖다 줬다”며 “돌덩이에 불과한 가짜를 보니 너무 화가 나서 그날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말했다.

'부당해고' 판정에 국방부는 소송전

이같은 국방홍보원 측의 차별에 항의하던 과정에서 염 감독은 2010년 입사해 8년간 고정급(세전 월급 235만원)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갑자기 프리랜서직을 요구받았다.

“항상 을인 상황에서 버틸 대로 버티다가 프리랜서 계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근무 태도 등을 문제 삼으며 퇴사를 종용했다. 결국 계약한 지 석 달 뒤인 2019년 3월에 해고당했다.”

이후 염 감독은 국방부 청사 앞에서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피켓을 들고 ‘1위 시위’에 나섰다. 또 노동청과 법원에 각각 부당해고 진정 및 임금체불 소송을 냈다.

염현철 천안함전우회 영상감독이 국방부 청사 앞에서 국방홍보원의 부당 해고를 호소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염현철]

염현철 천안함전우회 영상감독이 국방부 청사 앞에서 국방홍보원의 부당 해고를 호소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염현철]

그 결과 서울서부지방노동위원회(2019년 7월)와 중앙노동위원회(같은 해 10월)가 잇따라 “부당해고가 맞다”며 염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국방부와 국방홍보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또 서울서부지방법원(2019년 11월)이 체불된 임금 65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국방부 측은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재판을 통해 법과 원칙에 따라 확정될 사안”이라고만 밝혔다.

“헌신한 군인들, 대우 못 받아”  

2년째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염 감독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부인은 3살 아들을 돌보느라 일을 그만둔 상태다. 염 감독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매달 41만원을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조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천안함 생존 장병과 유가족을 위한 영상촬영을 꾸준히 하고 있다. 또 라미 현 사진작가가 진행하는 6ㆍ25 참전용사 촬영 프로젝트(프로젝트 솔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도 돕고 있다. 〈중앙일보 5월 13일자 18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너무나 훌륭한 군인들인데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너무 부당한 대우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공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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