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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셋 모이면 화제작 나온다…‘멜체’ ‘술도녀’ 잇는 ‘서른, 아홉’

중앙일보

입력

드라마 '서른, 아홉'. [사진 JTBC]

드라마 '서른, 아홉'. [사진 JTBC]

공황장애 치료를 위해 1년간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낼 계획이었던 피부과 의사 미조(손예진)는 친구 찬영(전미도)이 말기암 판정을 받자 미국행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 1년을 찬영의 마지막 시간을 돌보는 데 쓰기로 결정했다. 친구 주희(김지현)는 당첨된 4등 복권을 파쇄기에 갈아버렸다. 그 행운을 찬영에게 주고 싶어 당첨금 750만원을 포기한 것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 찾아온 행운, 너 가져가. 그래서 4년만 더 살아.”

JTBC 수목 드라마 ‘서른, 아홉’의 한 장면이다. 세 친구의 우정이 절절하다. 시한부 생명, 출생의 비밀, 새로 시작하는 사랑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입양 문제 등 다양한 극적 요소를 담아내는 기본 틀은 이들의 ‘워맨스’다. 최근 안방극장의 대세로 자리잡은 ‘여자 셋’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세 인물의 서사를 골고루 설득력 있게 보여주면서 이들이 보여주는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화제작 ‘멜로가 체질’(JTBC),  ‘술꾼도시여자들’(티빙)의 맥을 잇는다.

#각자도생ㆍ가족해체 시대의 판타지  

세 드라마는 공통점이 많다. 세 명의 친구들이 서로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고, 누구 한 명이 위기에 처하면 한달음에 달려가 도와준다. ‘멜로가 체질’에선 세 친구가 아예 한 집에 살았고, ‘술꾼도시여자들’에선 셋 중 둘이 동거한다. ‘서른, 아홉’은 각각 따로 살고 있지만, 걸핏하면 짐을 싸들고 한 집에 모인다. 일과를 마친 뒤엔 으레 친구들과 술 한 잔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낸다.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사진 티빙]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사진 티빙]

이들 드라마에서 부모는 친구보다 한 다리 먼 관계다.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존재지만, 고민거리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다. 해결사 역할도 늘 친구의 몫이다. 각자의 사회ㆍ경제적인 능력이 친구를 도울 밑천이 된다.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에선 부모나 남자의 힘을 빌어야 했던 일이다.

연인 역시 친구보다 중요하진 않다. 지난 3일 ‘서른, 아홉’ 6회 방송에서 미조는 남자친구 선우(연우진)와 캠핑을 가다 말고 돌아왔다. 주희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뒀다는 전화를 받아서였다. 미조는 주희가 걱정이 돼 안절부절못하다 결국 캠핑 계획을 접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이에 대해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가족해체가 급격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꼭 결혼하지 않더라도 ‘유사 가족’을 통해 충분히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젊은 여성들의 바람을 반영한 설정”이라고 말했다. 고령 시청자들의 대가족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한때 가족드라마가 주류를 이뤘다면, 이젠 MZ세대 여성 시청층의 환상을 반영한 ‘워맨스’ 드라마가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또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각자도생 시대, 경쟁에 지친 시청자에게 연대와 소통의 가치를 보여주는 콘텐트”라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돼주는 모습을 그릴 때 남성보다는 여성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이 개연성을 부여하기 더 쉽다”고 말했다.

드라마 '서른, 아홉'. [사진 JTBC]

드라마 '서른, 아홉'. [사진 JTBC]

#주ㆍ조연 따로 없는 삼각형 구도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도 이들 세 드라마의 특징이다. 세 명의 등장인물을 주연ㆍ조연으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 같은 ‘여자 셋’ 드라마지만 송혜교가 원톱 주인공을 맡았던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SBS)와는 사뭇 다른 구도다.

물론 극 흐름 상 중심이 되는 인물은 있다. ‘서른, 아홉’의 미조, ‘멜로가 체질’의 진주(천우희), ‘술꾼도시여자들’의 소희(이선빈) 등이다. 이들이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이 기승전결로 진행되며 드라마의 로맨스를 이끌어간다. 이들의 상대역(각각 연우진, 안재홍, 최시원)이 남성 등장인물 중에선 비중이 제일 크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 [사진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사진 JTBC]

나머지 두 친구 중 한 사람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와 서사를 맡았다. ‘서른, 아홉’의 찬영, ‘멜로가 체질’의 은정(전여빈), ‘술꾼도시여자들’의 지구(정은지)다. 찬영은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은정은 남자친구를 암으로 잃었다. 지구는 교사 시절 제자가 자살하는 아픔을 겪은 뒤 종이접기 유튜버가 됐다. 이들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상처를 극복하고 역경을 헤쳐나간다.

남은 한 친구는 통통 튀는 밝은 캐릭터다. ‘서른, 아홉’의 주희, ‘멜로가 체질’의 한주(한지은), ‘술꾼도시여자들’의 지연(한선화)이다. 너무 순진해 자칫 ‘민폐 캐릭터’로 전락할 우려가 있어 보이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외유내강’의 경지는 예상을 뛰어넘어 더욱 매력적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주연으로 여성 셋을 등장시키는 것은 워맨스 드라마의 전형적인 구도”라며 “로맨스가 주축인 드라마에선 메인과 서브, 두 명의 여성으로 충분하지만 여성들의 우정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둘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영미 평론가도 “동성의 인물 관계를 그릴 때 ‘3’이 가장 이야기 만들기 편한 숫자다. 주연 셋이 여러 조합의 상황을 만들어 재미를 더할 수 있는데다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보여줄 방법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자 셋’을 내세운 드라마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9일 첫 방송되는 ‘킬힐’(tvN)은 쇼호스트 세계에서 벌어지는 세 여자(김하늘ㆍ이혜영ㆍ김성령)의 욕망과 경쟁을 그린다. 또 세 자매(김고은ㆍ남지현, 박지후)를 등장시킨 ‘작은 아씨들’(tvN)도 올 하반기 방송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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