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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은 도움을 청한다"…서울대생들 정신건강 책임자

중앙일보

입력

“어려움은 언제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사건이나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는 거에요.”

서울대학교 학생상담센터 ‘대학생활문화원’(대생원) 원장인 김동일(58) 교육학과 교수의 지론이다. 평소에 자신이 어느 정도의 감정이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고, 한계치를 넘었을 때 안전한 대처 방안을 생각해보라는 의미다. 화가 났을 때 외진 곳에 가서 소리를 지르거나, 슬플 때 강변을 걷는 것 등이 이런 대처 방안에 속한다. 특수교육·교육상담 전문가인 김 원장은 “압도되는 상황에서 슬픔·분노 같은 감정은 통제가 불가하지만, 행동과 태도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며 “도움을 받는 건 똑똑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대생원은 국내 첫 공식 대학 상담기관으로 올해 60주년을 맞았다. 1962년 문을 연 ‘학생지도연구소’가 전신이다. 당시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였던 고(故) 정범모 전 한림대 총장이 ‘전후(戰後)를 겪은 대학생들에게 꿈을 그릴 기회가 필요하다’며 보직 교수들을 설득해 개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60주년 맞은 국내 최초 공식 대학 상담기관

3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대학생활문화원에서 만난 김동일 대학생활문화원장 겸 교육학과 교수. 이병준 기자

3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대학생활문화원에서 만난 김동일 대학생활문화원장 겸 교육학과 교수. 이병준 기자

대생원은 과거 성폭력·진로 상담도 했지만, 각각 인권센터와 경력개발센터로 기능이 나뉘어, 현재는 개인 및 집단 심리 상담과 역량 개발 프로그램 등의 운영을 맡고 있다. 국내 대학 유일의 24시간 심리상담 전화(스누콜)나 학사 경고를 받은 학생들과 아침밥을 같이 먹는 프로그램(학관밥 대선생) 등이 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김 원장은 “학사 경고를 받은 학생들의 경우 악순환이 있다. 밤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학교에 안 가고, 시험을 못 보는 일이 반복된다”며 “학생들과 같이 아침을 먹으면 학생들의 일상을 바로잡을 수 있고, 그들끼리 서로 도와줄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생원에는 직원 38명을 포함해 자원상담원, 실습 상담원(석박사 과정생) 등 총 58명이 근무하고 있다. 개인상담실만 10개고, 집단 상담 및 세미나실 4개를 운영하는 등 규모도 대학 상담소 중 최대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대생원은 예산 약 7억원을 배정받았다.

"정서적 취약 학생들, 코로나로 더 큰 피해"

김 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취약했던 학생들이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개략적으로 이야기할 때 70% 이상의 학생은 코로나19 상황에도 잘 적응한다. 학교를 안 와도 문제가 없는 학생들이다. 10% 정도는 비대면을 오히려 반긴다. 다른 20%는 어려움을 안고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이라며 “평소에는 우울감을 잘 견딜 수 있는 학생들도 코로나19 여파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못 받게 돼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했다.

서울대 학생들은 주로 우울 문제로 대생원을 찾는다고 한다. 대생원이 2008년부터 2021년까지의 상담 신청 데이터 4326건을 분석한 결과 학부생 내담자 5명 중 1명 이상이 우울 문제로 대생원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적응, 대인, 학업 문제 등이 뒤를 이었다. 코로나19를 전후해 학생들의 호소 문제 유형도 바뀌는 추세다. 코로나19 발발 이전인 2018년 내담자 호소 문제 유형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적응 문제는 2021년엔 10% 미만으로 비중이 급감했지만, 불안 문제로 대생원을 찾은 내담자 비율은 같은 기간 한 자릿수에서 약 20%까지 치솟았다.

“자살은 극단 선택 아닌 사망 사고”

김동일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장 겸 교육학과 교수. 이병준 기자

김동일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장 겸 교육학과 교수. 이병준 기자

김 원장은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거부감을 표하기도 했다. "(자살을) 선택이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그걸 선택지로 고려하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자해도 건강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자신의 몸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며 “하지만 자해를 하다 정도가 지나쳐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건 선택이 아닌 사망 사고”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석박사를 땄다. 한국청소년상담원(현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과 서울대 장애학생지원센터 등 상담 현장을 누볐다. 또 한국교육심리학회 회장, 한국아동청소년상담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는 대생원 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앞으로 비대면 상담 기능을 강화하는 건 물론,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자가 치유 교실 등도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의 적응을 돕고 힘을 북돋는 기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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