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칼럼

안영근 의원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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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안영근 의원(인천 남을.재선)은 흥미로운 정치인이다. 한나라당에 있을 때나 열린우리당에 있을 때나 늘 비주류니까 말이다. 그는 지난해 초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주장했고, "(유시민 의원 등)개혁당 세력들이 당을 나간다면 화장실에서 웃는 의원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가 곤란한 입장에 처한 적도 있다. 그의 겉으로 드러난 발언이나 정치 행적만 놓고 보자면 태생적 반골이나 앞뒤 못 가리고 튀기 좋아하는 '애송이'로 여길 만하다.

나도 그랬다. 그는 인하대 재학 중이던 1978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1년6개월 실형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80년엔 계엄령 위반으로 1년을, 83년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년의 감옥생활을 했다.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간부로, 민통련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경력을 가진 그가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부터 그리 자연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변절' 혹은 '전향'이란 단어를 떠올림직하다.

그런데 그는 2003년 7월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했다. 의원 배지는 한나라당에서 달고 집권에 실패하자 여당으로 옮아가는 철새 정치인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겼다. 여당에서 권력의 실세로 변신했다면 그에 대한 이런 의혹은 확신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안 의원은 여당에서도 주류가 되지 못했다. 수시로 대통령과 권력 핵심을 비판하는 여당 의원을 달가워할 정권은 없으니까. 그는 또 올 상반기부터는 고건 전 총리를 내놓고 지지하고 있다. "조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영원한 이방인인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선입견이 깨진 것은 우연히 그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입장 변화를 알게 되면서였다. 그는 2000년 8월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가 이회창 총재와 당 지도부에 속말로 '찍혔다'. 당에서는 보안법 유지를 만장일치로 의결하기를 기대했지만 "소수의견이지만 폐지를 주장한 의원이 있었음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열린우리당에 가서는 2004년 하반기 '4대 개혁입법' 논란의 와중에서 보안법 폐지에 반대하고 '개정 또는 대체입법'의 깃발을 들었다. 권력의 양지를 좇는 '철새'라면 한나라당에 있을 땐 보안법 존속을, 여당에서는 보안법 폐지를 주장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의 당시 발언들을 찾아봤다. 또 직접 만나 왜 그랬는지 물어봤다. 안 의원은 "역설적으로 보안법을 폐지할 수 있는 정치집단은 한나라당뿐"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이 폐지하자고 하면 국민이 안심할 수 있지만, 열린우리당이 폐지하자고 하면 불안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 의원이 초안을 작성한 여당 내 중도 성향의 '안개모(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 발기문에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국정 운영은 항공모함 운항하듯 신중하게 해야 한다. 조각배처럼 운항하면 여론이 따라오지 않는다" "개혁은 국민과 함께 완급을 조절하면서 해야 한다" "야당과의 협상은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보안법의 피해당사자였기에 그의 주장은 설득력 있다.

안 의원이 소신대로 정치생활을 끝마칠 수 있을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보안법에 대한 유연성은 극단적 대립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여당은 왜 "북한 핵의 볼모로 살 수는 없다"고 말하기를 주저하는가. 한나라당은 왜 "북.미 직접대화로 해결하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언제까지 '평화'는 진보의 구호이고, '안보'는 보수의 전유물이어야 하는가. 성장과 분배는 영원히 양립할 수 없는가.

정책적으로 어느 정도 넘나들 수 있어야 건강한 보수, 안정적 진보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은 상대적으로 나은 '차선'을 택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덜 나쁜 '차악'밖에 선택할 수 없게 된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