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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둘다 싫어도 투표한다? 사전투표 역대 최고치 원인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일 시작된 20대 대선 사전투표의 열기가 뜨거웠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사전투표 첫날 투표율은 17.5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국 유권자 776만 7735명이 이날 투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운데), 심상정 정의당 후보(오른쪽)가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투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송봉근 기자,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운데), 심상정 정의당 후보(오른쪽)가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투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송봉근 기자, 국회사진기자단.

오미크론 확산세로 이날 코로나19 신규확진자가 26만명을 넘어섰지만, 19대 대선 당시 사전투표 첫날 투표율(11.7%)을 마감 세 시간 전인 오후 3시(12.31%)에 일찌감치 돌파했다. 코로나 발생 초기(2020년 4월) 치른 지난 21대 총선 첫날 사전투표율은 12.14%였다. 대선 사전투표는 5일까지 이어지며,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전국단위 선거의 사전투표율 최고 기록이었던 21대 총선의 26.69%를 넘어 30%를 돌파할 것으로 선관위는 전망했다.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오후 2시~4시 투표율이 가장 높았다. 지역별로는 전남(28.11%), 전북(25.54%), 광주(24.09%)가 나란히 1~3위를 기록했고 경기(15.12%), 대구(15.43%), 인천(15.56%)이 최저였다.

여야는 이날 경쟁적으로 사전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 대선 후보 3인이 일제히 이날 투표에 참여했다. 그간 주요 대선 후보들은 본 투표 당일 투표장을 찾는 게 관례였지만, 20대 대선에선 과거와 달랐다.

與, 지도부 일제 사전투표…“지지층 막판 결집에 투표율 상승”

민주당은 ‘사전투표는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과거 공식을 이어가려는 듯 당 전체가 사전투표 독려에 나섰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뒤 “촛불을 들고 광화문과 시청 앞에 모였던 수많은 국민들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페이스북엔 투표 인증샷을 올리면서 “사전투표했다. 투표하면 이긴다”라고도 적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후보는 당초 유세 일정에 맞춰 강원 속초에서 투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전날 야권 단일화가 전격적으로 이뤄지자,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 한가운데서 투표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강훈식 캠프 전략기획본부장은 “청년들과 직장인들이 많은 곳에 가서 투표를 독려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당 지도부도 첫날 사전투표에 앞장섰다. 송영길 대표는 제주에서, 윤호중 원내대표는 지역구 경기 구리에서 투표를 마쳤다. 이 후보와 단일화를 한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는 충남 논산에서 사전투표를 하며 전국 세몰이에 힘을 보탰다.

민주당에선 이날 높은 사전투표율에 대해 “단일화 악재 극복을 위해 여권이 막판 역(逆)결집을 이루면서 상승했다”(수도권 재선의원)고 주장했다. 전통적으로 지지세가 강했던 전남·전북·광주가 투표율 전국 1~3위를 기록한 걸 염두에 둔 해석이다. 민주당의 호남 의원은 “호남 민심은 예전엔 본 투표 당일에도 ‘오후에 투표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타 지역을 주시하며 전략적 투표를 했다”며 “이번엔 과거로 회귀하려는 윤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한 위기감으로 총결집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전투표율 상승을 더이상 유리하게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예년과 달리 국민의힘도 강하게 사전투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며 “특정 정치 지향보다는 코로나19 확산세 속에 사전투표율이 늘어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밝혔다. 우상호 선대위 총괄본부장은 이날 T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미 (지지) 후보를 결정한 확신층들이 사전투표를 주로 한다”며 “부동층들이 제일 마지막 날 투표를 하는데, 앞으로 3~4일간이 아마 그 부동층 싸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尹 “첫날부터 승기 잡자”…사전투표 독려 유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오전 부산 남구청 대강당에 마련된 대연제6동 사전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220304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오전 부산 남구청 대강당에 마련된 대연제6동 사전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220304

야권 단일화에 성공한 국민의힘은 초반 세몰이에 당력을 모았다. 윤 후보는 이날 오전 부산 남구청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찾아 투표한 뒤 페이스북에 “사전투표 첫날부터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사전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해달라”고 적었다. 경북 경주로 이동해 유세를 펼치던 중엔 “저도 오늘 부산에서 사전투표를 했다. 부정 의혹을 걱정하고 계시는 걸 알지만, 이번엔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투표를 독려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 이후 보수층 일부에 남아있는 ‘사전투표 부정선거 의혹’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 집중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당은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사전투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할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며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오늘 사전투표에 나설 윤석열 후보와 함께 사전 투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높아진 사전투표율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이대남(20대 남성)’을 비롯한 신규 지지층의 영향력으로 해석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핵심 관계자는 “윤 후보에게 우호적인 20대 등 젊은 층은 본 투표보다는 사전 투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또한 사전투표부터 정권심판론이 거세지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야권 단일화로 사전투표율이 올랐다는 주장도 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야권 단일화로 정권 교체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며 “오미크론 확진자 급증 등 본 투표 직전 벌어질 수 있는 각종 변수를 고려해 윤 후보 지지층이 서둘러 투표를 마친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 투표율은 ‘박빙 대선’ 때문? “유권자 적응 결과” 해석도

초반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투표율 상승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은 다양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전국 단위 선거 투표율은 2006~2008년 저점을 찍은 뒤 꾸준히 상승해왔다”며 기존 추이의 연장선으로 바라봤다. 신 교수는 “반복된 촛불시위 등으로 각 세대의 정치 효능감이 올라갔고, 탄핵 등 정치적 경험이 유권자들에 누적되면서 ‘두 후보 다 마음에 안 들더라도 내 표가 죽은 표가 되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식이 커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 날인 4일 오후 서울 영등포아트홀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 날인 4일 오후 서울 영등포아트홀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뉴스1

박빙 대선에 따른 효과란 분석도 있다.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이번 대선은 초반부터 과열 양상을 보였다”면서 “윤석열 지지자도 윤석열을 불안해하고, 이재명 지지자도 이재명에 불안감을 느끼는 ‘불안’ 코드 때문에 사람들이 선거에 대해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의 삶을 위해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전투표 열기가 최종 투표율 상승으로 반드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은 “사전투표는 시행 후 참여율이 계속 높아져 왔다. 유권자가 제도에 적응해서 첫날 투표율이 올라간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등 다른 변수도 있어 최종 투표율이 14대 이후 평균 대선 투표율인 74.99%를 넘길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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