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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석훈의 반박불가

진보에게도 투명한 회계는 기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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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의 여전히 불투명한 회계를 비판한 김경율 회계사의 글에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가 보내온 답글입니다.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의 삶은 그의 동성 연인이었던 피에르 베르제와 떼어놓고 해석하기 어렵다. 이브 생로랑이 자신의 디자인을 가지게 되는 과정에 연인이자 후원자인 베르제의 역할이 결정적 도움이 됐다.

생로랑(왼쪽)과 베르제. [중앙포토]

생로랑(왼쪽)과 베르제. [중앙포토]

전형적 좌파 인사인 베르제는 한때 프랑스 정통지 르몽드의 공동 운영자이기도 했고, 게이들의 권리 그리고 에이즈 퇴치에 그의 후반부 삶을 쏟았다. 그런 그가 2009년 12월 한 TV 자선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한다. 모금된 돈을 실제 사업에 쓰기보다 모금 단체가 자기 건물을 사는 등 방만하게 운영한다는 주장이었다. “1억 유로의 텔레톤(TV 장시간 모금방송) 모금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국제 구호와 관련한 많은 기구의 자금 집행에 대한 논의는 투명성 자체에 대한 질문과 함께 사업비 비중의 타당성, 이 두 가지에 집중된다. 혹시 새는 돈이 없는가, 이게 투명성 문제다. 부패 없이 투명하게 집행하였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기구를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의 비율을 사용하는가, 즉 기부자들이 낸 돈이 제대로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가, 이게 두 번째 질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시민단체를 비롯해서 많은 비영리 법인들이 있고, 공익단체들은 기부 문화 발전과 함께 점점 증가할 것이다. 규정상 자체적으로 감사를 둬야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 알아서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다. 일부 단체는 사실상 창업자 1인 단체인 경우가 많아서, 이사회가 제대로 된 견제 역할을 못 하기도 한다. 그나마 정부 지원을 좀 더 많이 받는 협동조합은 이사장의 임기를 4년 이하 연임까지만, 최대 8년으로 법에서 엄격하게 관리한다.

회계의 투명성과 공정한 집행이 법인의 기본이지만, 많은 공익단체에 아직은 아쉬운 점이 많다. 이건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한국 공익단체 상당수가 여전히 진보하지 못한 관습의 영역이다. 여기에 정파적 온정주의가 덧붙여지면, 뻔한 문제들을 서로서로 덮어주면서 넘어가게 된다.

지난 2020년 5월 검찰이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에서 압수수색 물품을 옮기고 있다. 검찰은 부실회계·안성 쉼터 고가 매입 의혹과 관련해 정의기억연대를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지난 2020년 5월 검찰이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에서 압수수색 물품을 옮기고 있다. 검찰은 부실회계·안성 쉼터 고가 매입 의혹과 관련해 정의기억연대를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선의로 출발한 많은 단체가 규모가 작았을 때 처리하던 방식을 규모가 어느 정도 되었을 때도 개선하지 못하다가 결국 크고 작은 사건으로 비화한다. 우리 편이니까 괜찮다? 그런 건 안 좋은 습관이다. 정확한 회계는 자본주의의 기본이다. 사립 유치원에 국가 표준 회계를 적용하자는 요구가 2020년 유치원 3법이 되었다. 힘들어도 그렇게 가는 게 맞다. 당시 대다수 유치원들 역시 규모가 작고 운영이 어려워 그렇게 정확한 회계를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전제로 공적 회계 시스템이 정착되었다.

다음 정부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진보와 보수 쪽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규모와 관계없이 법률상 공익단체의 범용 회계 시스템을 표준으로 만들어서, 최소한 유치원 수준으로는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편이니까 좀 봐주고, 규모가 작으니까 좀 봐주고, 그렇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기본을 정비해야, 정부는 활동에 따른 보조금을 더 늘리고, 시민들도 공익적 사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그렇게 가는 게 맞는 방향 아닌가? 진보 혹은 보수 단체, 각기 정치적 입장은 다르더라도 공통으로 갖춰야 할 회계 투명성 정도는 사업 방향과는 별도로 이제 정비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런 회계 투명성 기반 위에 원래의 사업 목적이 아니라 자기 기구의 건물 등 내부 투자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공익이 사익이 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 결국은 시민들의 몫이다. 과연 우리가 낸 회비나 기부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가, 그 믿음을 잘 만들어내는 것이 성숙한 자본주의다. 아직 좀 더 가야 한다. 시민단체에 지나치게 많은 비정규직이나 단기 계약직 등 같이 논의할 주제가 많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