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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달나라금토끼(경찰)가 고발한다

韓서 수능생보다 힘센 딱 하나···'요술방망이 집시법'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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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달나라금토끼 (필명) 현직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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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받는다고? 집시법 활용해서 경찰 부려먹자. 그래픽=김경진 기자

스트레스 받는다고? 집시법 활용해서 경찰 부려먹자. 그래픽=김경진 기자

경찰인 제가 지금부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활용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원칙이라서 국민 모두가 누릴 수 있지만, 단순히 '내 의견을 알리는 데만 활용할 수 있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식만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번 기회에 집시법을 100%를 넘어 1000%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1000%라고 결코 내 권리를 넘어서는 행위는 아니니까 염려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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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앞의 장송곡 

1. 소음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스트레스는 많은데 노래연습장도 못 가고, 풀 방법도 마땅치 않으시죠? 걱정 마세요. 집시법이 있습니다. 가까운 경찰서에서 평소에 마음에 안 들었던 회사나 가게 앞에 집회신고를 하세요. 그리고 소형앰프, 경제적 여력이 되시면 방송 차를 한 대 빌려서 마음껏 소리 지르세요. 노래를 불러도, 구호를 외쳐도 되지만, 많은 분들은 목이 안 아프도록 녹음한 방송을 틀거나 장송곡을 애용하십니다. 집시법에 소음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관대해서 옆사람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큰 소리도 소음 기준치를 넘기지 않습니다. 높은 층에서는 소리가 울려 낮은 곳에서보다 더 크게 들리지만, 고층 건물 환경에 맞춰서 소음을 측정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도 마땅치 않습니다. 단 한 명이 있어도 원하는 만큼 큰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믿기지 않으시거든 내일 출근 시간에 대기업 본사 앞에 가보세요. 이미 많은 분들이 마음껏 장송곡을 틀고 있을 겁니다. 학교나 주거지역, 심지어 수능시험장에서도 활용이 가능해서, 가끔 수능시험 당일 집회를 개최하는 건설노조가 있으면 경찰관들은 제발 시험시간에는 방송을 틀지 말라고 사정을 하고 다니기도 한답니다. 또 법원이 2019년 전광훈 목사의 청와대 앞 집회 당시에 학교 앞에서 방송을 크게 틀어도 학습권이 침해받는 것은 아니라고 쉴드를 쳐줘서 큰소리 내기에는 집시법이 무적의 치트키입니다.

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 천막농성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LG트윈타워분회 해고 노동자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 천막농성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LG트윈타워분회 해고 노동자들. [연합뉴스]

2. 천막과 현수막
요즘 집값도 비싸고 주거지 마련하기 힘드시죠? 걱정 마세요. 집시법이 있습니다. 살기 편한 도로나 인도에 24시간 집회신고를 내놓고 천막을 치세요. 물론 집시법이 도로를 점거할 권리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도로를 점용하면 강제철거를 당할 수도 있고, 교통방해죄라는 무시무시한 처벌규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24시간 집회를 한다고 우기면 침낭에서 노숙을 하든, 텐트를 치든, 심지어는 천막을 쳐놓고 숙식을 해도 관할 시·군·구청에서는 절대 그냥 철거하지 않습니다. 경찰도 불법 천막을 철거한 후 법원에서 위법하다면서 손해배상을 하도록 판결을 받은 사례가 여러 차례 있어서, 일단 천막 설치에 성공했다면 경찰도 어쩔 도리가 없으니 안전합니다. 코로나 절대백신으로도 잘 알려진 민주노총 조끼라도 하나 입고 여러분의 회사 앞 도로에 ‘고용보장’ 현수막이라도 하나 걸어놓으면 직장·주거 근접이 가능한 곳에서 여러분의 주거안정은 평생 보장됩니다. 집값이 폭등한 강남, 세종시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만일의 사태가 걱정된다면 집회를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현수막을 많이 쳐놓으세요. 구청에서는 그 현수막도 절대 철거하지 않습니다. 강남역 사거리에서는 1년 365일 언제든 서낭당 같은 현수막 천지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혹시 구청에서 철거를 시도하더라도 정체 모를 노조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나타나 인의 장벽을 쳐서 ‘무자비한 권력의 집회 탄압’으로부터 여러분의 천막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입니다.

집회 신고하면 불법주차도 OK 

3. 교통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으신가요? 걱정 마세요. 집시법이 있습니다. 집회신고서에 준비 물품으로 ‘자동차 1대’라고 적기만 하면 됩니다. 집회신고가 주차를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괜찮습니다. 지자체에서는 집회 물품이라고 우기면 하면 무엇이든 그냥 놔두더라고요. 친절한 자치단체에서는 순수 홍보행사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이 비법을 알려주며 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하도록 권하기도 합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집회신고 장소 옆에 차를 주차하면 아무도 단속하지 않을 겁니다. 도로든, 인도든, 심지어는 주차금지구역이든. 다른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한복판은 위험하겠지만, 집회 현장에는 교통경찰이 별도로 배치돼서 여러분을 든든하게 지켜줄 겁니다. 대중교통에도 응용할 수 있습니다. 이미 장애인들은 작년 연말부터 수십 일째 스크린도어와 지하철 사이에 휠체어 바퀴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매일 출근 시간 지하철 배차 간격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 약속장소에 집회신고 잊지 마세요!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앞에서 규탄 집회를 했다. [뉴스1]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앞에서 규탄 집회를 했다. [뉴스1]

4. 안전
혹시 소유하신 건물의 보안을 강화하고 싶으신가요? 걱정 마세요. 집시법이 있습니다. 사유지 안전관리 책임은 소유주나 관리자에게 있지만, 괜찮습니다. 지인의 이름으로 집회신고를 낸 후 경찰서에 시설보호요청서를 보내세요. 집회 참가자가 건물 무단진입을 할 수 있다고 하면 경찰 기동대에서 나와서 건물을 지켜줍니다. 이런 업무에 투입하기 위해서 서울에서만 이미 수천 명의 경찰관들이 기동대에서 대기 중입니다. 전날 야간에 112 신고에 출동해야 하는 경찰관을 동원해서라도, 경찰은 꼭 여러분을 지켜줄 겁니다. 그런데 진짜로 집회를 하던 사람들이 당신 집에 무단침입을 했다고요? 안타깝지만, 그건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집회 도중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을 전부 처벌하면 집회 주최 측이나 소위 말하는 인권 단체에서 가만히 있지 않거든요. 차라리 최근에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에서 그랬던 것처럼 집회신고를 내놓고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는 쪽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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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 경찰도 집시법 개정 꿈도 안 꿔

5. 주의사항
단, 지금까지 알려드린 매뉴얼은 집시법이 개정되는 경우에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집회에도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적용해서 집회 주최자가 집회시위와 관련된 질서유지의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집회신고를 할 때, 실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이름과 나이, 전화번호만 적으면 그만인 ‘질서유지인’ 제도를 강화해서 주최 측에 질서유지 책임을 엄격하게 부과하면 필요 이상으로 집회를 개최하는 것이 피곤해질 수도 있습니다. 집회 도중 소음피해나 불법행위가 발생했을 때 주최자에게 과태료나 배상책임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개정될 수도 있습니다. 소음 기준이 더 엄격해질 수도 있습니다. 또, 지금은 기껏해야 50만원, 100만원인 집시법 위반죄의 벌금이 상향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집시법의 혜택을 누리고 있어서 아직 이 혜택을 모르는 시민들의 분노와 불만이 여간 큰 게 아니거든요.

하지만 걱정마세요. 소관부처인 경찰청도, 정치권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시법 개정은 꿈도 꾸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입법이 논의되기 시작하면 우리의 든든한 친구들인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이 앞장서서 막아줄 겁니다. 서두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집회시위의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권리이고, 이 땅에 민주화와 노동권 보장을 이룩하는 데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 자유를 제한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지몽매한 일베 나부랭이들이라고 공격하면 되거든요.

현장 경찰관이 방패막이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불법 집회 주도'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양경수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뉴스1]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불법 집회 주도'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양경수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뉴스1]

집 앞 공사장에서 새벽부터 건설노조에서 장송곡을 틀어대는 통에 잠을 설쳐서, 못 적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데 안 그렇다고 적은 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이 매뉴얼대로 집회를 하면 주변 가게에서 장사가 안된다면서 욕을 먹을 수도 있고, 근처 학교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우리의 아이들이 장송곡을 흥얼거리거나 험한 말을 따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법원에서는 쉽게 손해배상 판결을 내려주지도 않을 거고, 자치단체에서는 좀처럼 움직이지도 않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또 ‘대화 경찰’이라는 제도가 생겨서 싸움이 있으면 대화 경찰이 나타나 얼마든지 싸움을 말려주고 대신 욕먹어줄 겁니다. 그 밖에 다른 문제가 생기면 항상 경찰을 탓하세요. 경찰은 고집스럽게 집회 신고제도를 유지하면서 집회 개최의 모든 관리 책임을 굳이 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모든 민원은 경찰에게 쏟아지고, 100건이든 1000건이든 경찰이 친절하게 답해줄 겁니다. 든든한 우리 경찰! 이제 여러분도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1000% 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