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현장취재|우리는 팬데믹 세대, 2022년 우울한 대학생들의 초상

중앙일보

입력 2022.02.26 00:02

“꿈과 낭만의 대학문화? ‘코로나 새내기’에겐 꿈같은 이야기죠.”

입학 3년 차 접어들지만 수업은 여전히 ‘비대면’ 지속

우울감 심각… 대학생 30% 휴학·자퇴 고민하기도

2021년 3월 비대면 개강으로 한산한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 / 사진:연합뉴스

2021년 3월 비대면 개강으로 한산한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 / 사진:연합뉴스

2022년 1월, 대학원 졸업반인 A씨는 어렵게 석사 학위 논문 작성을 마치고 지도교수의 승인을 받았다. 2년여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받게 됐지만, A씨는 정작 지난 2년 동안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대학원 과정의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A씨의 지도교수를 맡았던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A는 대학원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메리트를 전혀 누리지 못했다”며 “대학원생에게 필수적인 토론과 랩(Lab)실 생활 모두 경험해보지 못한 채 졸업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생 B씨. 그는 이따금 극심한 무기력감에 빠지곤 한다. 대학교에 들어와 그가 경험한 대학생활이라곤 화상 수업뿐이었다. 그마저 수업하는 교수가 영상회의 프로그램 조작에 서툴러 집중도가 떨어졌다. 출석 확인하는 것 외에 깊이 있는 강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서버 용량 문제 때문에 학교 당국이 강의 데이터베이스를 삭제하거나 실시간으로만 진행하고 있어서 강의를 다시 보며 복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B씨는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서 TED나 세계적인 석학의 온라인 강연을 들으며 허탈함을 달래곤 한다. “한 학기에 수백만원 학비를 들여가며 제공받는 게 어설픈 영상 강의뿐이란 사실에 때때로 화가 치밀기도 해요. 교수님이나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 학업에 대한 동기부여가 안 되다 보니 이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B씨가 느끼는 무력감과 불안감은 지금의 대학생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감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대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2020년에 입학한 신입생이 어느덧 3학년이 됐지만, 2년간 캠퍼스에서 수업에 참여해보지도 못한 채 졸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됐다. 오미크론 확산세가 지속하면 올해도 대면 수업을 기대하기 어렵다. ‘코로나 블루’는 대학생들의 우울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에 따르면 이 같은 부작용은 2020년 2월, 대학들이 전면 비대면 수업을 시작하면서 예고됐다. 오프라인 강의실이 갑작스레 온라인으로 옮겨지면서 교수와 학생 사이에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온라인 강의에 서툰 교수들은 새로운 강의 방식에 적응하느라 진땀을 뺐다. 실시간 강의를 선택한 일부 교수는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인 줌(ZOOM)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 일쑤였다. 비대면 강의를 시작한 뒤 프로그램 설정과 강의 출석을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뺏기는 바람에 정작 수업은 시간에 쫓기는 게 다반사였다.

수업 집중도 저하 호소… 실습마저 이론 강의로 대체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됐던 지난 11월 서울의 한 여자대학교. 오랜만에 등교한 학생들로 캠퍼스가 활기를 띠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됐던 지난 11월 서울의 한 여자대학교. 오랜만에 등교한 학생들로 캠퍼스가 활기를 띠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혼란을 겪은 건 마찬가지였다. 강의실이 폐쇄돼 대체 공간을 구하지 못한 학생들은 집과 카페로 뿔뿔이 흩어졌다. 모니터로만 소통하는 비대면 수업의 한계는 수업 집중도 저하로 이어졌다. 2020년 1학기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수강했던 박소영(23)씨는 “비대면 수업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교수님과의 상호작용이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발표 등을 고려했을 때 마땅한 공간이 자취방뿐이었는데, 강의에 효율적으로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20학번 이모(20)씨는 “침대에 누워서나 밥을 먹으면서 수업을 들은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비대면의 한계를 악용하는 학생도 비일비재했다. 녹화된 영상을 시청하는 수업의 경우 고배속으로 재생해 출석만 확인하는 꼼수는 약과였다. 몇몇 학생은 카메라가 고장 났다며 수업을 등한시하기도 했다. 서울 소재 대학 기계시스템디자 인공학과에 재학 중인 정모(21)씨는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를 경우 감독이 어렵다 보니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학생들이 있었다. 친한 이들끼리 노하우처럼 공유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실습이 필수인 강의조차 이론 강의로 대체됐다. C전문대 치위생과에 재학 중인 이시은(20)씨는 “실습 과목들은 진짜 실습을 해봐야 이해할 수 있는데, 1학년 때 전부 이론으로만 대체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정말 많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외부 병원에서의 상호 실습이 일부 취소됐고, 대학병원에서도 실습생을 소수만 받아들여 실습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정모씨도 “물리학 실험과목을 들을 때 4인 1조로 실험을 진행하는 게 원칙인데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격주로 2명이 등교해 실험을 진행하고, 나머지 2명에게 실험 결과를 안내해줘야 했다”고 했다. 정씨는 “실험을 직접 해보지 않아 이론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컸다”고 덧붙였다.

“화면 속 얼굴이 더 익숙해”… 무너진 캠퍼스 라이프

코로나19 대유행 직전 대학 입시를 막 끝낸 20학번 대학생들이 꿈꿨던 낭만적인 캠퍼스 라이프도 단꿈에 그치고 말았다. 학교, 학과마다 전통으로 이어져오던 문화가 단절되며 ‘대학 공동체’가 사실상 붕괴한 것이다. 개강 전 신입생 환영과 적응을 돕기 위해 열리는 새내기새로배움터(새터)는 물론, 학번 대표를 선출하는 개강총회 등 오프라인 행사가 모두 폐지된 대학가의 봄은 적막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20학번 이성현(20)씨는 “코로나19로 2년 동안 개강총회가 열리지 않아 학번 대표가 계속 공석이었다. 최근에야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투표를 열어 선출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입학 직전까지만 해도 기대가 컸는데 모니터로만 만날 수 있는 ‘랜선 친구’만 느는 것 같아 서글프다”고 덧붙였다.

화상회의 프로그램 화면으로 얼굴을 보며 각자의 공간에서 술을 마시는 ‘랜선 술자리’ 등이 비대면 사회의 대안 문화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내 사라지곤 했다. 2021년 초 코로나 학번인 20학번과 21학번의 친목을 도모하려 랜선 술자리를 가졌던 이현민(20)씨는 “당시를 떠올리면 민망함부터 앞선다”고 했다. “모니터를 보면서 건배하고 게임을 하는 내내 서로 민망하고 어색했다. 결국 랜선 모임은 두 번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나마 답답한 학생들의 숨통을 틔운 것은 동아리였다. 자체적으로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조건하에 학교 측도 활동을 완전히 막지 않았다. 정규용(21)씨는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렵다 보니 체력을 기르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비교적 모임이 활발한 축구 동아리에 가입했다. 정씨는 “학술 모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아리가 전반적으로 잘 운영되는 편이어서 신입생들의 학교 적응을 돕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진 촬영 동아리에서 활동 중인 이성현씨도 “팬데믹이 잠시 주춤했던 작년에 오프라인 사진전을 개최한 덕분에 우울감이 다소 진정됐다”고 말했다.

팬데믹 장기화로 우울감 등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하는 대학생들의 상황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수준이다. 근본적 원인은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이 되고, 집이나 자취방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대인관계가 축소되는 데 있다. 전북 소재 대학 산업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김의곤(24)씨는 “전역 후 복학한 뒤로 줄곧 집에만 있었다. 무기력해지고 게을러지는 걸 느끼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게을러진 나 자신에게 실망하면서도 무기력감을 좀처럼 떨쳐내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경제적 손실과 시간의 손실 다 겪고 있는 취약층”

2020년 3월, 개강 직전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면 강의가 중단됐다. 20학번 신입생들은 고대하던 첫 수업을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들어야 했다. / 사진:연합뉴스

2020년 3월, 개강 직전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면 강의가 중단됐다. 20학번 신입생들은 고대하던 첫 수업을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들어야 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서 2021년 12월 발행한 ‘코로나19, 대학(원)생 심리·정서 지원 방안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대학생 및 대학원생 2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2021년 중 수일간 지속되는 우울감을 경험한 대학생과 대학원생은 33.2%로 드러났다. 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의 기분 변화를 경험한 학생은 41.4%를 기록했으며, 극단적 선택에 대해 진지하고 구체적인 생각을 해본 학생도 20.2%로 나타났다.

대학생이 꼽은 심리·정서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은 ▷취업 경쟁 및 불안의 심화(33.5%) ▷경제적인 어려움(18.8%) ▷초기 성인으로서의 가치관, 인생 청사진 부족(14.8%) 등이었다. 대교협은 보고서에서 “경쟁적 환경, 미래에 대한 압박감과 불안함 등이 코로나19와 중첩되며 대학생의 심리적 위기를 가져온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교수는 월간중앙과의 전화통화에서 “청년층의 우울증은 팬데믹 이전에도 취업·경제적 여건 등의 문제로 심해지고 있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대학생의 우울감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진단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통상적인 우울증 유병률은 5~10%”라며 “우울증이 아닌 우울감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33.2%면 통상 수준에서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난 시기의 우울증은 취약 계층에서 특히 급증한다”며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 계층은 경제적 손실과 시간의 손실을 모두 겪고 있는 취약층”이라고 해석했다.

곽금주 교수는 오프라인에서의 대인 관계가 무너지면서 우울감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곽 교수는 “학부생의 경우 함께 MT를 떠나거나 학회 등의 활동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데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우울감 해소의 기본은 사람 대 사람의 소통과 관계 맺음인데, 이 관계가 부족해 우울감이 더욱 심해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휴학·자퇴를 고려했던 학생도 29.9%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요한 이유로는 ▷비대면 수업의 비효과성(31.7%) ▷사회 활동의 감소(23.9%) ▷학교생활 적응의 어려움(17.2%) 등이 제시됐다. 정규용씨는 “비대면 수업이 계속된다면 실습 경험 부족과 제한적 소통 등이 겹쳐 심각한 손해를 끼칠 것”이라며 “이미 코로나19 때문에 공부를 비롯해 제대로 된 대학생활을 누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비대면 수업의 비효과성에 대해 당연한 반응이라고 해석한다. 임명호 교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라며 “인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해온 소통이 비대면 수업에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비대면 수업에선 특히 몸짓, 표정 등 비언어적 표현이 매끄럽게 전달되지 않는다”며 “학생들이 염증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 블루 3년째, 교수와 학생들은 모두 올해는 꼭 대면 강의가 돌아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민준 월간중앙 인턴기자 19g29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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