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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수퍼카 모는 2030 급증…‘무늬만 회사차’ 탈세 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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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임광현 국세청 차장

임광현 국세청 차장

2020년 5월 금요일 밤 서울 강남의 한 유명 클럽 앞, 수억원에 달하는 형형색색의 수퍼카들이 멈춘다. 운전자 대부분은 20~30대다. 절반 이상이 법인 업무용으로 등록된 차량이다. 또 법인 명의 수퍼카를 가지고 자동차 경주장(서킷) 동호회에서 재력과 속도를 뽐내는 사례도 다수 파악된다. 모두 ‘무늬만 회사 차’다.

회삿돈으로 수퍼카를 사서, 보험료 유류비 등을 부담케 하고 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엄연한 탈세다.

사주가 정당하게 급여나 주주 배당금으로 차를 샀다면 그 과정에서 근로·배당소득세를 납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인차량은 그렇지 않다. 종합소득세 최고세율이 45%니, 수퍼카 시세의 절반 가까운 세금이 일실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차량유지를 위한 유류비나 보험료를 개인은 비용으로 공제받을 수 없지만, 법인 업무용 차량은 공제가 가능하다. 차량 구입 대금도 일정액으로 나누어 매년 법인소득에서 차감할 수 있다. 법인세도 함께 누수되는 것이다. 이 모든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일반 성실 납세자에게 귀결된다. 사주 일가가 수퍼카 굴리는 것을 국가와 국민이 세금으로 지원하는 셈이다.

외국에서는 회사차량의 업무용 범위를 엄격히 제한한다. 미국은 사적 사용의 예시로 일상적인 출퇴근, 휴가·주말 사용, 배우자 사용 등을 열거하고 있다. 호주는 운행일지에 집에 주차한 일수도 기재하도록 권고한다고 알려져 있다. 집에 업무용 차량이 주차돼 있으면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최근 4년간 연 매출 100억원이 넘는 법인의 세무조사 사례를 딥러닝 기법으로 분석해 보았다. 고가 차량을 법인 명의로 구입 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실제 근무하지 않은 사주 가족에게 고액 급여를 지급하다 적발된 법인의 탈세액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퍼카 보유나 사적 유용’이 기업과 사주의 탈세 위험도를 예측하는 지표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합계 8억원에 달하는 수퍼카 2대를 법인이 취득하고 전업주부인 배우자와 자녀가 자가용으로 사용하면서 회사가 그 비용을 부담케 한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은 사주와 법인은 수백억원의 세금을 추징 당했다.

최근 코로나 상황에서도 럭셔리·수퍼카 판매가 급증했고, 어떤 브랜드는 80% 이상이 법인 판매라고 한다. 국세청은 이런 이유로 ‘수퍼카 법인 명의 구입 후 사적 유용’ 행태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점검 결과 탈루 혐의가 있다면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다. 공정이 사회적 화두이고 국민적 관심사인 상황에서 이는 대표적인 불공정 편법 탈세 행위이기 때문이다.

임광현 국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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