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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도박 수사 흘린 경감…"수사기법" vs "선 넘었다" 검경 갈등[이슈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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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경찰청 전경. 연합뉴스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경찰청 전경. 연합뉴스

檢 "경찰 수사 관행 경종 울리는 차원" 

불법 도박 사이트 수사 과정에서 사건 관계인에게 압수수색 정보 등을 흘린 현직 경찰 간부가 기소된 것을 놓고 검·경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검찰은 이번 기소가 "잘못된 경찰 수사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이라는 반면 경찰은 "원래 해오던 수사 기법으로 정당한 수사"라고 맞서는 분위기다.

전북경찰청은 22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A경감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오는 24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 내부에서는 "다툼의 여지가 크기 때문에 징계를 보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다. 징계 의결을 보류하면 통상 1심 선고까지 기다리게 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김성룡 기자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김성룡 기자

A경감 "원래 해오던 수사 기법" 혐의 부인 

오지석 전북경찰청 감찰계장은 "검찰은 '위법하다'고 판단했지만 당사자는 부인하는 등 양측 의견이 엇갈려 국가공무원법상 직위 해제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면서 "하지만 직무와 관련한 비위 행위로 기소됐기 때문에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지난달 17일 전북 지역 한 경찰서 소속 A경감을 불구속기소 했다. A경감은 2020년 4월부터 7월까지 게임 사이트 관련 혐의를 수사하던 중 9차례에 걸쳐 게임업계 종사자 B씨에게 압수수색 계획 등을 누설한 혐의다. A경감은 "제보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통상적인 질문만 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전주지검 군산지청. 뉴스1

전주지검 군산지청. 뉴스1

檢 "적법한 수사 기법 아냐…개선 필요"  

사건의 발단은 2020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은 경찰이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게임산업법 위반)로 입건한 C씨 측 변호인의 고발로 수사에 착수했다.

군산지청 관계자는 "검찰과 법원이 비밀로 하는 압수수색 계획 등을 정보원에게 알려주고 더 좋은 정보를 얻어내는 건 적법한 수사 기법이 아니고 사법기관을 농락하는 것"이라며 "경찰 수사 관행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기소하게 됐다"고 했다.

'무리한 기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고발된 내용에 한해 수사했다"는 입장이다. 군산지청 관계자는 "수사를 통해 확보한 통화와 문자 내역 등을 바탕으로 A경감의 혐의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압수수색할 것' '계좌 추적 중' 메시지 확보 

검찰은 '압수수색 사전 답사를 했고, 이제 실시할 것이다', '압수수색 결과 불법 환전 사실을 확인했다', '추가 계좌 추적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사이트를 수사 중이다', '아무개를 구속시킬 계획이다' 등 A경감이 보낸 메시지를 근거로 댔다. 군산지청 관계자는 "정보원에게 줄을 대는 건 수사하는 입장에서 흔한 유혹이지만, A경감은 선을 넘었다"고 했다.

검찰은 A경감과 연락을 주고받은 B씨는 기소하지 않았다. 군산지청 관계자는 "B씨가 A경감에게 정보를 누설해 달라고 했다면 공범이 될 수 있지만, A경감 본인이 다른 수사를 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정보를 흘린 것"이라며 "두 사람 사이에 금품이나 향응을 주고받은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2021년 1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제한되는 검찰 직접수사 범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21년 1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제한되는 검찰 직접수사 범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경찰 "검찰 현장 몰라 탁상공론 식 이야기만…"

경찰 동료들은 "검찰 수사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북경찰청 한 간부는 "A경감은 사이버수사 분야를 대표하는 분인데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실제 압수수색 정보 등이 그쪽(수사 대상)에 들어갔으면 검거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건을 묵인한 게 아니라 사이버 도박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수사를 성공시켰다면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다는 방증 아니냐"고 덧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A경감은 게임산업법 위반 등 혐의로 4명을 구속하고 5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그는 이 사건을 해결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경위에서 1계급 특진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수사 현장을 모르고 탁상공론 식 이야기만 한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수사관은 "인터넷 주소(IP)를 추적해도 도박 사이트 서버 자체를 해외에 두고 입금 계좌를 석 달마다 바꾸기 때문에 내부 제보가 없으면 수사하기 어렵다"며 "운영자들은 대포폰을 이용하고 텔레그램으로 움직여 1년간 계좌만 수백 개 추적하다 수사가 끝나기 일쑤"라고 했다.

이형세 전북경찰청장. 연합뉴스

이형세 전북경찰청장. 연합뉴스

이형세 청장 "검·경 의견 달라…법원 판결 받아야"  

이형세 전북경찰청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상적인 수사 범위인지에 대해서는 현재 경찰과 검찰 양 기관의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법원 판결을 받아야 이 행위의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누구를 칼로 찌른 사건은 물리적으로 명백하지만, 이 사건은 (A경감과 검찰 간)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며 "이럴 경우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해 처리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 "(A경감은) 이번 수사를 통해 수사 대상자들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며 "애초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이 사건으로 구속되고 기소된 피고인들인데 로펌의 도움을 받아 법률적으로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A경감에 대한) 고소·고발을 취하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판사봉. 중앙포토

판사봉. 중앙포토

"검·경 대화 통해 수사 방법 기준 정해야"

일각에서는 "2021년 1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과 검찰이 영장 신청 등을 두고 견해차를 나타내는 상황에서 두 기관 모두 상대 기관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반적인 수사 절차나 원칙은 정해놨지만, 개별 사건에 대해 두 기관이 서로 이해하고 업무 협조를 하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건의 긴급성과 절박성 등을 판단하는 데 현장에서 직접 뛰는 경찰과 책상 위에서 판단하는 검찰 사이에 간극이 있다"며 "양 기관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사 방법의 선이 어디까지인지 원칙을 정하고 절차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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