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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분류도 안된채 홀로 죽은 재택치료자…사각지대 커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제2주차장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많은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뉴스1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제2주차장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많은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어서면서 확진자 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상자가 폭증하다 보니 환자 분류부터 재택치료 안내, 응급상황 관리를 담당하는 보건소에 과부하가 걸렸다는 지적이다. 최근 일주일 새 재택치료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앞으로 관리 사각지대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0대 확진자 자택서 사망…보건소 전화 못 받아 환자 분류도X

지난 19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주택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집에 머물던 59세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지자체에 따르면 A씨는 17일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18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A씨가 확진된 뒤 집을 나와 다른 장소에 머물던 가족들은 18일 오전 마지막 통화 이후 A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119에 신고했다. 하지만 119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A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문제는 A씨가 확진된 후 만 하루 동안 사실상 방치 상태로 있었다는 점이다. 20일 관악구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A씨는 환자 분류조차 안 된 상태였다. 통상 보건소는 확진 판정 당일 환자에게 연락해 기저질환 유무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재택치료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A씨가 확진 판정을 받은 18일, 보건소는 4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 안내 조치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수차례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 보건소에서 직접 자택을 방문해 환자 상태를 살펴야 하지만 그런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 방역당국은 일일 신규 확진자가 10만명대에 도달한 상황에서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70대, 재택치료 중 무단이탈…찜질방서 사망

17일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재택치료 건강모니터링 센터에서 의료진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17일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재택치료 건강모니터링 센터에서 의료진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앞서 지난 15일 인천시 동구에서 재택치료 도중 찜질방으로 무단이탈한 75세 남성 B씨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2시 52분쯤 찜질방에서 쓰러진 B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6일 오전 사망했다. 사인은 다발성 장기부전과 코로나19 감염이었다. 지난 11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B씨는 집중관리군 재택치료자로 분류돼 17일 오전 0시까지 1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으나 집을 벗어나 찜질방을 찾았다가 숨졌다.

예전 같았으면 위치정보시스템(GPS) 기반 자가격리 애플리케이션으로 격리 중인 환자를 감시했겠지만, 정부는 지난 9일 이 앱을 없앴다. 확진자 폭증으로 보건소 등에 일이 몰리다 보니 더는 일일이 관리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개인의 자율과 책임에 기댄 방역 정책으로 선회한다는 취지라지만, 사실상 국민들이 알아서 하도록 손을 놔버린 셈이 됐다.

전문가 “확진자 늘며 상황 악화될 것…고위험군 관리해야”

20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 진열된 코로나 재택 가정상비약. 연합뉴스

20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 진열된 코로나 재택 가정상비약. 연합뉴스

보건소 업무 과부하로 확진 판정 이후 안내 연락이 오지 않거나, 고위험군에 재택치료 키트 전달이 늦어지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지난 13일 아이가 확진됐는데 15일에서야 연락이 왔다” “3~4일 지나야 연락이 온다”는 등의 게시글이 이어졌다. 지난 15일 확진 판정을 받은 채모(61)씨는 “확진 후 3일 뒤에야 해열제 등 건강 키트가 배달왔다”며 “미리 약국에서 약을 사다 놓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아무리 오미크론이 경증이라고 해도 확진자가 10만명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지난해 12월보다도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보건소를 비롯해 의료 방역 인력이 고위험군에 더 집중돼야 한다”라며 “현재 60세 이상 등을 집중관리군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이 안에서도 분류를 세분화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고령자 중 백신 미접종자나 기저질환자 등은 따로 분류해 생활치료센터에 입원치료를 시키는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재택치료자 폭증으로 당장 관리도 어려운데 방역 완화 시동을 거는 건 무리”라며 “우선 확진자를 최대한 조절하는 게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당국의 관리 소홀 문제를 짚으며 "앞으로 한 달 동안은 계속 이런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정 교수는 정부의 메시지 전달 방식의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오미크론의 위험도가 낮다는 인식을 자꾸 정부가 주게 되면 사람들의 경각심이 떨어질 수 있다"라며 "'현재 여건상 계절독감처럼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 위험도가 계절독감 수준으로 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을 대중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코로나19에 확진돼 재택치료를 받았던 류근혁(58)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보건복지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재택치료를 하는 분들의 불만과 개선 요구 사항을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지난 11일 확진돼 일주일 동안 재택치료에 들어가 18일 0시 격리해제됐다. 류 차관은 해당 글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재택치료 대상자가 확진 이후 최대한 빠른 시기에 확진 통보를 받고, 통보 후 지체 없이 환자 분류 안내 및 이에 따른 행동요령 등 주요 정보를 안내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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