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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2인자 괴링, 와인 감별사 보내 ‘보르도 빈티지’ 약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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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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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별장 켈슈타인하우스 점령 직후, 보관된 와인을 마시는 연합군. [사진 위키피디아]

히틀러의 별장 켈슈타인하우스 점령 직후, 보관된 와인을 마시는 연합군. [사진 위키피디아]

넷플릭스의 최신작 ‘뮌헨-전쟁의 문턱에서’는 1938년 히틀러와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 사이의 협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한 영화다. 조롱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체임벌린의 또 다른 면모를 표현한 제러미 아이언스의 명연기가 일품이지만, 나치 지도부의 생활 습관을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묘사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총통은 본인이 있는 자리에는 어디서나 고기를 내놓지 말라고 할 정도로 채식주의자야. 헤르만 괴링은 배가 고파 죽겠다는 표정이더군.”

영화에 그려진 것처럼 히틀러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술도 즐겨하지 않았고 담배 냄새를 특히 싫어했다. 다만 디저트 케이크는 매우 좋아했다. 반면 나치의 2인자 괴링은 애연가였으며, 육류 등 식탐이 많아서 ‘뚱보 헤르만’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였다. 괴링은 도수가 높은 슈납스만큼이나 고급 와인을 즐겨 마셨다. 하이델베르크대학 박사 출신인 나치 선전장관 파울요제프괴벨스가 피노누아 품종이 주류를 이루는 부르고뉴 와인을 선호하였다면, 괴링은 보르도를 좋아했으며 특히 샤토 라피트 로트쉴드 예찬론자였다. 괴링은 전투기 조종사로 1차 대전에 참전해 22번이나 승리를 거둬 최고 훈장을 받은 영웅이었다. 높은 지능에다 예술에 대한 심미안과 유머 감각은 나치 지도부에서 최고였으며 댄디한 면모도 보였다.

와글와글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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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예술품과 빈티지 와인, 괴링이 특별히 애착을 가졌던 두 가지였다. 1940년 6월 14일,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할 때 예술품 특수부대(ERR)가 따라왔다. 박물관에 전시 중이거나 유대인이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을 약탈하여 파리의 죄드폼 미술관에 쌓아 두었다가 독일 각지로 예술품을 보냈다. 괴링은 약탈 예술품 가운데 일부를 베를린 인근에 있던 별장 카린할(Carinhall)에 빼돌릴 정도로 미술품 수집에 집착했다. 나폴레옹 전쟁 때 초대 루브르박물관장 비방 드농이 유럽 각지를 순회하며 예술품을 리스트에 지목하면 특수부대가 이를 파리로 강탈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이었다.

켈슈타인하우스에서의 히틀러와 나치 지도부. 맨 왼쪽이 히틀러, 가운데가 괴링. [사진 위키피디아]

켈슈타인하우스에서의 히틀러와 나치 지도부. 맨 왼쪽이 히틀러, 가운데가 괴링. [사진 위키피디아]

ERR이 문화재 전쟁을 수행하는 특수부대였다면, 포도주 전쟁을 위해 점령지에 파견한 사람들은 ‘바인퓌러’(Weinführer)라 불렀다. 와인과 샴페인을 감별하여 본국으로 보내는 임무를 담당한 전문가들이었다. 반면 와인은 프랑스인의 혼(魂)이었기에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와인과 전쟁』이라는 책에 따르면, 파리를 대표하는 고급 레스토랑 ‘라투르 다르장’의 와인 지키기 일화는 눈물겨울 정도다. 센강과 노트르담성당 부근에 자리 잡은 이 식당은 도쿄의 뉴오타니호텔에도 분점을 두고 있는데, 본점의 경우 지하 2층으로 이뤄진 저장고에 30만 병 이상의 와인을 보관하여 이 부문 세계기록을 세운 식당이며 와인 메뉴가 흡사 백과사전 같다. 그런데 나치의 파리 점령이 눈앞에 다가오자 레스토랑 사장은 지하 저장고에 황급히 비밀 벽을 쌓고 그 안에 특급 와인 2만 병을 넣어 두고 밀봉한 뒤 나머지 8만 병만 노출되게 함으로써 고급 와인을 지킬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그 사장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고 한다. “프랑스인이 된다는 것은 조국을 위해 싸우고 포도주를 위해 싸운다는 의미이다.”

종전을 향해 치닫던 1945년 5월 4일, 미군과 프랑스군은 뮌헨 남쪽 알프스 산악지대에 자리 잡은 베르히테스가덴이란 마을로 진격하고 있었다. 두 나라 병사들에게는 히틀러의 여름 별장 켈슈타인하우스를 상대국보다 먼저 차지하라는 극비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해발 1881m 높이의 절벽 위에 있어서 ‘독수리 둥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고, 1939년 4월 20일 히틀러의 50번째 생일날 문을 연 뒤, 나치 고위 인사들의 파티와 외빈 접견 장소로 애용되던 경관이 뛰어난 곳이었다. 근처에는 뮌헨 회담이 열리기 전 히틀러가 체임벌린 총리를 만났던 베르크호프(Berghof)라는 히틀러의 사저도 있었지만, 연합군의 폭격으로 이미 파괴된 직후였다. 요새를 지키던 독일군은 정상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진입로를 폭파해 버려 산악등반하듯 올라가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미군에 앞서 정상에 먼저 도달한 것은 프랑스군, 이들에게는 히틀러 별장을 점령했다는 공적뿐 아니라 또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그곳에 숨겨진 엄청난 분량의 고급 와인을 찾아내야 했다. 수색작업 결과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약 50만 병의 와인이 요새의 동굴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는 29년산 샤토 라투르, 34년산 샤토 무통 로트쉴드, 37년산 샤토 라피트 로트쉴드 등 빈티지 와인과 코냑, 샴페인, 포트와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술을 즐겨하지 않았던 히틀러의 별장에 왜 그처럼 많은 고급 와인과 샴페인이 보관되어 있던 걸까? 동굴은 그 자체로 훌륭한 와인 저장고였다. 외교행사나 귀빈들의 파티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군비 충당의 ‘캐시카우’ 목적이 있었다. 프랑스 산업의 기반을 흔들어 놓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프랑스군은 동굴에서 발견한 고급 와인을 들것에 담아 내려 보낸 뒤 서둘러 자국 영토로 실어 보냈다. 한발 늦은 미군 역시 나머지 와인을 찾아낸 뒤 전리품으로 챙겼다. 독수리 요새 함락 직후 촬영한 사진에는 와인과 샴페인 병을 들고 즐기는 연합군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들이 어쩌면 역사상 가장 멋진 장소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향연을 벌인 군인들일지 모른다. 반면 연합군에 항복한 괴링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형이 집행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괴링에게 최후의 음료는 빈티지 와인이 아닌 독극물이었다.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ceonomad@gmail.com
MBC 베를린특파원과 iMBC 대표이사 를 지냈으며,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등 여러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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