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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기술경쟁 6ROUND] 라운드 5: 생명공학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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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전, 물리학과 공학이 우리의 세계를 완전히 바꿔 놨다면, 이제는 생물학과 공학이 우리의 미래를 깊게 바꿔 놓을 준비가 됐다.

신경과학자이자 전 MIT 총장이었던 수잔 호크필드가 한 말이다.

생명공학 기술(Biotechnology)은 유전체학, 생화학, 분자생물학 등 다양한 생명학(Biology) 분야에서의 발견을 고부가가치 제품과 서비스 생산에 이용하는 기술이다. 일반적으로 이름에 색깔을 붙여 세부 분야를 구분한다. 레드 바이오(Red Bio)는 생명공학을 보건 의료에, 그린 바이오(Green Bio)는 농수산‧축산‧식품에, 화이트 바이오(White Bio)는 환경‧해양‧에너지‧소재 등에 응용한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프리시던스 리서치(Precedence Research)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바이오산업 시장 규모는 7938억 7000만 달러(약 953조 5172억 원)이며, 2030년까지 8.7%의 연평균 성장률(CAGR)로 증가해 시장 규모가 약 1조 6835억 원 달러(약 2022조 7252억 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벨퍼 연구 보고서는 지난 20년 동안 중국이 생명공학 기초 연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의 생명공학 분야 출판물은 연평균 20%씩 증가했으며, 미국에 이어 출판량 수로 전 세계 2위에 등극했다. 2020년에는 중국이 국제 유력 학술지에 발표한 연간 생명공학 논문 수가 9%나 증가해 독일과 영국을 제치고 네이처 인덱스(Nature Index) 평가 2위에 등극했다.

[사진출처=벨퍼 연구 보고서]

[사진출처=벨퍼 연구 보고서]

특히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작물(CRISPR-modified crops)과 형질 전환 식물(transgenic plants) 등의 분야에서 중국의 연구 성과가 미국을 넘어섰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작물의 경우 중국과 미국의 연구 성과 점유율은 각각 42%와 19%, 형질 전환 식물의 경우 30%와 12%를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은 전 세계적으로 생명공학 기술 특허를 가장 많이 내는 나라로 꼽힌다. 2000년 1%에 불과했던 중국의 글로벌 생명공학 기술 특허 점유율은 2019년 28%까지 확대됐다. 반면 미국의 점유율은 45%에서 27%까지 많이 감소했다. 특히 레드 바이오 분야 특허는 중국의 연간 성장률이 16%로 미국의 3%를 크게 앞서고 있다.

중국의 성장세가 눈부시긴 하지만, 아직 생명공학 기초연구 분야에서 중국의 성과가 미국에 뒤처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벨퍼 연구 보고서는 중국이 생명공학 기술의 응용개발과 상업화에 강하다는 점을 주목했다.

유전체 기술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2000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밀레니엄 시대의 문을 열었다면, 중국은 2018년 세계에서 가장 큰 게놈 프로젝트로 맞춤 의학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중국 정부는 중국인들이 앓는 질병의 유전적 근거를 규명하기 위해 4년 동안 중국인 10만 명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중국인 게놈 지도를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앞서 중국 장수(江苏) 성 난징(南京) 시 정부는 2017년 10월 거주자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시민 100만 명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게놈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던 같은 해,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賀建奎)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도록 유전자를 편집해 쌍둥이 여자아이를 탄생시켰다고 발표했다. 허젠쿠이의 발표는 국제 생명윤리 기준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받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됐다.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 [사진출처=바이두]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 [사진출처=바이두]

그러나 벨퍼 연구 보고서는 이 사건을 중국이 자국의 느슨한 규제를 발판 삼아 바이오 기술 응용 면에서 미국을 뛰어넘고 있다는 신호로 평가했다. 실제로 전 세계 유전자 편집 기술(CRISPR) 임상시험의 절반가량이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등 세계 각국이 유전체 정보를 민감한 개인 정보로 규정해 보호와 규제를 일삼는 사이, 중국은 정부 주도로 논란을 잠재우고 기술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BGI(Beijing Genomics Institute)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성장한 대표 유전체 기업이다. 중국 국가연구소로 출발한 BGI는 2013년 미국 컴플리트 제노믹스(Complete Genomics)를 인수하며 현재 세계 2위의 게놈 분석업체로 거듭났다. BGI는 매년 2500건이 넘는 보고서를 자체 발간하고, 이 중 300건 정도가 네이처와 사이언스 지에 실릴 정도로 뛰어난 연구 능력을 갖췄다. 이를 바탕으로 BGI는 경쟁사 대비 6배, 2000년 시세보다 10만 배 저렴한 100달러의 원가로 인간 게놈 서열을 분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벨퍼 연구 보고서는 바이오 의약품과 치료 분야에서도 “중국이 실험실의 발견을 상업적인 제품으로 바꾸는데 강한 면모를 보인다”고 평가했다. 2001년 이후 (특히 2015년 중국 국가약품관리감독국(NMPA)이 의약품 허가 규정을 대폭 손질한 이후) 중국은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시장 점유율을 7%에서 22%까지 끌어올려 미국 다음으로 2위에 올랐다. 이는 정부의 규제 완화 등으로 중국 기업의 신약 출시 부담이 크게 경감되며 가능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원료의약품(API) 산업에서의 발전도 두드러진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제약시장은 연평균 2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은 글로벌 원료의약품(API) 시장에서 20%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미국(35%)과 유럽연합(35%) 다음으로 3위에 올랐다.

여태까지 중국의 바이오 의약품 분야 성장은 상당 부분 복제약(generic drug, biosimilar)이 견인했다. 혁신은 부족하지만 두터운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양적인 성장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벨퍼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신약개발 능력도 크게 향상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년간 중국이 연구 중인 신약후보 물질은 3배나 증가해 2017년 800개에 이르렀다. 이 중 10%는 신약 허가를 받기 위한 최종 단계인 임상 3상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향상된 신약개발 능력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CAR-T 치료분야다.

[사진출처=바이두]

[사진출처=바이두]

CAR-T 치료란 CAR-T는 면역세포의 일종인 T 세포를 유전자 조작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면역세포가 암세포만을 정확하게 표적 하기 때문에 체내 정상 세포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획기적인 암 치료법으로 주목받는다.

2017년, 중국의 작은 바이오 벤처기업이었던 난징 레전드 바이오테크(Nanjing Legend Biotech)은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에 놀라운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자사가 개발 중인 CAR-T 치료제를 다발골수종 환자에게 투여했더니 94%에게서 효과가 나타났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은 난징 레전드 바이오테크에 3억 5000만 달러(약 3800억 원)를 투자하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중국은 CAR-T 치료 강국으로 거듭났다. 2020년까지 CAR-T 치료제 임상시험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시행됐으며, 현재 전 세계 CAR-T 치료의 4분의 1 이상이 중국에서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벨퍼 연구 보고서는 아직 미국이 생명공학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보았다. 존슨앤드존슨(J&J), 애보트(Abbott), 화이자(Pfizer), 머크(Merk) 등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의료기업 10개 중 7개가 여전히 미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 생명공학을 ‘중국제조 2025’의 10대 핵심 성장 동력 중 하나로 선정하고 관련된 투자, 개혁, 지원 등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만큼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바이오 기업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느슨한 규제, 방대한 시장과 인적 자원을 등에 업고 혁신을 거듭해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차이나랩 권가영 에디터
자료: The Great Tech Rivalry: China vs the U.S. / Graham Allison, Kevin Klyman, Karina Barbesino, Hugo Yen

[사진출처=차이나랩]

[사진출처=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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