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View & Review] 40일 새 12조 몰린 정기예금…증시서 자금 ‘유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주부 윤모(40)씨는 요즘 시간 날 때마다 시중은행의 정기적금 상품을 살펴본다. 특판 상품이 나왔는지, 기본금리와 우대금리 차이 등을 꼼꼼하게 비교한다. 이 중 금리가 높은 상품 3개를 골라 매달 120만원을 쪼개서 넣을 계획이다. 윤씨는 “지난해 처음으로 삼성전자와 카카오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2000만원을 투자했는데 현재 -10% 손실이 났다”며 “불안해서 여유자금은 주식 대신 예·적금 통장에 넣어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증시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줄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증시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줄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직장인 홍모(43)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주식 일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2년 전에 만든 2000만원짜리 한도대출(마이너스 통장)을 갚기 위해서다. 자동차 구매 비용에 보태려고 마통을 열었지만, 빌린 돈의 대부분은 주식 투자에 썼다. 홍씨는 “지난해 말부터 주가 하락세가 심상치 않았다”며 “금리 상승기에 빚내서 투자했다간 손실이 더 커질 수 있어 마통부터 정리했다”고 했다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쏠렸던 자금이 올해 들어 안전자산인 은행예금으로 이동하는 ‘역(逆) 머니무브’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도 식어가고 있다.

15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11일 기준 673조8412억원(법인 자금 포함)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661조9599억원)보다 11조8813억원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첫 긴축 신호탄을 쏜 지난해 8월 말(632조696억원)과 비교하면 다섯달 새 42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올해 시중은행 정기예금에 12조 몰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올해 시중은행 정기예금에 12조 몰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은행과 달리 주식 시장에서는 돈이 메말라간다. 하루 평균 거래대금(코스피+코스닥)은 1년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하루 평균 거래대금(20조6541억원)은 2020년 5월(20조2271억원) 이후 가장 낮다. 주식 투자 열풍이 분 지난해 1월(42조1072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식어가는 빚투 열기는 수치로 나타난다. 개인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 11일 기준 21조5475억원(금융투자협회 자료)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23조886억)대비 1조5411억원 쪼그라들었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진 영향이 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시계가 빨라질 것이란 우려 속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고조되는 겹악재에 국내외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5일 코스피는 연초 대비 10.4% 하락한 2676.54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해 7월 기록한 사상 최고가(3305.21)와 비교하면 19% 폭락했다.

각국의 긴축 움직임은 안전자산인 정기예금의 몸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장기화하는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어서다. 한은이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기준금리를 세 차례(0.5%→1.25%) 올리면서 시중은행 수신금리도 잇따라 오르고 있다.

15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올라있는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은행)의 14개 정기예금 상품(1년 만기)의 기본 금리는 연 1.33%다. 0%대였던 석 달 전(연 0.84%)보다 약 0.5%포인트 올랐다. 여기에 급여·관리비 이체, 신용카드 사용 등 우대금리 혜택 요건을 끌어모으면 최대 연 2.05%의 금리를 받을 수 있다.

김인응 우리은행 영업본부장은 “올해 들어 정기예금 금리를 물어보는 고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지난해 증시로 눈을 돌렸던 상당수가 이자 부담이 커진 빚(대출)을 갚거나 예금을 늘리는 등 은행으로 돌아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다음 달부터 역 머니무브가 본격화될 것으로 봤다. 미국이 이르면 다음 달 기준금리 인상에 시동을 걸 것으로 예상해서다. 미국이 그동안 풀었던 돈을 거둬들이기 시작하면 국내외 금융시장이 유동성 축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주명희 하나은행 도곡PB센터장은 “Fed가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 금융시장 변동성은 증폭될 수 있다”며 “주식시장에 머물던 대기자금도 본격적으로 은행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인응 본부장도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커질 때는 정기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대피해야 한다”며 “다만 예금 금리는 하반기 더 오를 수 있어 당장은 만기가 1년 이내로 짧은 상품에 묻어두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