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안락사 86%→4% 뚝…개들 죽어나가던 '지옥'서 무슨 일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9일 오전 충남 예산의 한 동물보호센터 모습. '뜬장' 속 레트리버 혼종 한 마리가 겨우 서있는 모습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9일 오전 충남 예산의 한 동물보호센터 모습. '뜬장' 속 레트리버 혼종 한 마리가 겨우 서있는 모습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9일 오전 충남의 한 야산. 축사 옆 낡은 비닐하우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KF94 마스크를 써도 소용없을 정도의 악취가 풍겼다. 33㎡(10평) 남짓한 비닐하우스에는 8개의 ‘뜬장’이 설치돼 있다. 뜬장은 가축의 배설물 처리를 위해 바닥을 뚫은 철장을 말한다.

안에는 발바닥이 빨갛게 부은 레트리버 혼종 한 마리가 오물이 묻은 채 서 있었다. 예산군이 민간에 위탁한 동물(유기견·유기묘)보호센터의 모습이었다. 그나마 뜬장 한쪽에는 개들이 앉을 수 있게 녹슨 철판을 놓아두긴 했지만 일반적인 ‘개 사육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뜬장'에서 유기동물 보호중 

뜬장 옆 견사도 환경은 열악했다. 견사엔 5마리 대형견이 ‘보호’ 중이었다. 동물보호법상 15㎏ 대형견엔 일정 크기의 공간(100x150x100㎝ 이상)을 제공해야 하지만 비좁은 공간에 사실상 갇혀 있는 모습이었다. 보호소엔 관계법상 갖춰야 할 진료·격리실 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근의 또 다른 동물보호센터도 사정은 비슷했다. 채광·환기에 취약한 읍내 한 상가 지하 창고에는 강아지 여러 마리가 쓰레기 더미와 함께 있었다. 강아지는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 처리된다.

유기동물 관리 시스템도 허점투성이었다. 같은 유기묘가 동시에 입양·보호종료(자연사)로 분류돼 있는가 하면, 심지어 ‘종’도 잘못 소개돼 있을 정도다. 예산군 관계자는 “업무 담당자가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김세현 비구협 이사가 예산의 한 동물보호센터 내 뜬장을 살펴보고 있다. 뜬장 안엔 오물이 묻은 유기견이 ‘보호’중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김세현 비구협 이사가 예산의 한 동물보호센터 내 뜬장을 살펴보고 있다. 뜬장 안엔 오물이 묻은 유기견이 ‘보호’중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민간 맡겨진 상당수 보호센터 동물권 취약 

민간이 위탁 운영 중인 지방자치단체 동물보호센터의 상당수가 여전히 동물권 보호 등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보호센터 문제는 2020년 7월 전북 정읍에서 유기동물을 돈벌이에 이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이후 정부는 지난해 9월 ‘유기 반려동물 관리체계 개선방안’을 마련했고, 일제점검도 시작했지만 좀처럼 문제점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1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280곳 지자체 동물보호센터 중 228곳이 민간에 운영을 맡겼다.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가 지난 2년새 93곳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유기동물 90여 마리를 무더기로 안락사하거나, 사료를 주지 않아 굶겨 죽인 사례 등이 줄줄이 드러났다. 횡령의혹도 불거졌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민간에 위탁한 지자체 동물보호센터를 직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간위탁은 자칫 ‘이익구조’로 악용될 소지가 큰 탓이다. 지자체별로 포획자에게 한 마리당 포획비 3만 원~10만 원, 안락사비 6만 원 등을 예산으로 지급하다 보니 유기동물이 국가보조금(위탁비)을 받는 구조로 인식되고 있다. 많이 포획하고 안락사시킬수록 ‘돈’이 되는 셈이다.

비구협이 최근 발표한 ‘2021 전국 시·군 동물보호소 실태조사 및 개선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여전히 열악한 시설·환경에서 유기동물을 보호 중이거나 안락사 규정을 지키지 않은 문제 등이 지적됐다. 동물보호센터는 입양공고 후 10일 지나도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한다. 이때 다른 동물이 보지 않는 곳에서 마취제를 2회 투여한 뒤 안락사 약물을 주입해야 하지만 비용을 절감하려 마취제를 생략하는 곳이 수두룩하다는게 비구협 측 설명이다. 입양 의지가 의심되는 곳도 있다.

시설이 열악한 유기견보호소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시설이 열악한 유기견보호소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죽어 나가는 곳' 오명도 

이런 사이 지자체 동물보호센터는 ‘죽어서 나가는 곳’이란 오명을 쓰고 있다. 실제 지난해 한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 온 유기동물은 483마리다. 이중 50%가 자연사(34%)하거나 안락사(16%)했다. 동물구조단체 위액트 함형선 대표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유기동물 보호소는 ‘동물들이 죽어서 나오는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운영 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직영 전환의 성과가 나타난 곳도 있다. 경남 고성이 대표적이다. 고성군 보호센터의 2020년 안락사 비율은 86.7%에 달했지만 직영 전환한 지난해 안락사 비율은 4%로 급감했다. 안락사 비중이 80%포인트 넘게 줄어든 사이 입양률은 49.4%로 전국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9일 오후 대전시가 직영으로 운영 중인 동물보호센터는 ‘반려동물 호텔’로 불릴 정도로 환경이 뛰어나단 평가다. 자원봉사 학생들이 유기견을 돌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9일 오후 대전시가 직영으로 운영 중인 동물보호센터는 ‘반려동물 호텔’로 불릴 정도로 환경이 뛰어나단 평가다. 자원봉사 학생들이 유기견을 돌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직영 전환 센터, 안락사 비율 확 떨어져  

대전 동물보호센터는 직영 전환 이후 이른바 '반려동물의 호텔’로 불리고 있다. 2009㎡(608평) 공간엔 동물병원을 비롯해 입양 대기실, 동물 운동장 등이 마련돼 있다. 총 249마리의 유기동물을 수의사 2명을 포함한 17명의 직원이 교대로 돌본다고 한다.

대전시는 다른 시·도와 달리 농생명정책과 안에 아예 ‘동물보호팀’ 조직을 따로 두고 있다. 전담팀이 동물보호센터 운영을 맡는 구조다. 동물관리 체계를 꾸준히 개선할 수 있었던 비결로 평가받는다. 실제 대전시 내 유기동물 발생 건수는 지난해 2112마리로 2018년 5333마리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 유기동물 중 69%가 주인을 찾거나 새 가족에게 입양됐다. 이요안나 대전시 동물보호팀장은 “시설·시스템·운영 인력 3박자를 맞춰 가자 매년 유기동물 수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지자체 보호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8월 경북 구미의 한 가건물에 개 80여 마리가 방치된 채 발견된 일이 있었다. 동물학대가 의심돼 동물보호단체가 구조를 벌였지만, 구미시는 ‘주인’이 있다는 이유로 직접 구조활동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구미시 관계자는 “당시 시가 운영하고 있는 유기동물 보호소가 포화 상태인 데다 주인이 있는 동물은 원칙적으로 지자체가 처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유영재 비구협 대표는 “지자체가 유기동물이 아닌 동물을 처리할 수 없는 것은 맞다”면서도 “지자체의 유기동물 책임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