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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직접 합격생에 읍소 전화" 초유의 '지방대 쇼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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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학노조 부산경남본부 소속 동아대 등 6개 대학 노조원들이 지난해 12월 부산시청 앞에서 지방대 붕괴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전국대학노조 부산경남본부 소속 동아대 등 6개 대학 노조원들이 지난해 12월 부산시청 앞에서 지방대 붕괴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봉근 기자

15일부터 시작하는 20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을 앞두고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대를 위한 공약을 내 달라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이 문제는 지역 민심·경제와도 직결된 만큼, 대선 후보들도 '지방대 살리기' 공약으로 화답하고 있다. 하지만 합격생 등록에 급급한 지역 대학가의 어려움은 갈수록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경남사립대교수회연합회를 주축으로 한 36개 지방 교수·시민단체 연합은 11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선 후보들을 향해 지방대 문제 해결에 앞장서달라고 촉구하는 자리였다. 지역 교수·시민단체가 연합해 한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갈수록 빨라지는 지방대 위기에 교수는 물론, 지역사회도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방대 문제 방치시 지방 소멸 가속화"

연합 측은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날로 심해지는 상황에서 학령인구 경감으로 지방대의 무더기 폐교, 지방교육 붕괴가 가시화되고 있다"면서 "이 문제를 방치하면 지방 산업체계, 혁신역량이 약화해 지방 소멸이 가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선 9일에는 전국 거점국립대학으로 구성된 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등교육 대선 공약'을 제안했다. 지난달 19일엔 수도권을 제외한 대학 총장들이 모여 지역대학 정책을 촉구하는 청원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광주 한 대학이 최초 합격 후 등록자에게 '아이폰'을 주겠다고 내걸었다. 홈페이지 캡처

광주 한 대학이 최초 합격 후 등록자에게 '아이폰'을 주겠다고 내걸었다. 홈페이지 캡처

지방대가 살아나야 한다는 주장이 왜 쏟아질까. 위기를 체감하는 교수들은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산경남사립대교수연합회 안현식(동명대) 회장은 "거점국립대 몇 개를 제외하고는 상당수 지방 대학에서 교수가 직접 합격생들에게 전화해 등록해달라고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지방 사립대 교수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합격생에게 등록을 읍소하는 전화를 돌렸지만, 교수 전화가 큰 의미가 있겠나"라면서 "교수들의 자괴감만 깊어질 뿐"이라고 말했다.

암울한 전망 "24년 뒤 지방대 60% 소멸"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만큼이나 지방대 미래를 분석한 결과들도 냉랭하다. 지난해 12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최한 '미래전망 전문가 포럼'에서 이동규 동아대 기업재난관리학과 교수는 2046년 국내 대학 중 절반(49.4%)만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지방대는 252곳 중 101곳만 살아남을 것으로 봤다. 24년 뒤 약 60%가 사라지는 것이다.

대학교육연구소도 비슷한 결과를 내놨다. 연구소에 따르면 정원의 70%를 못 채우는 지방대 비율은 2024년 34.1%, 2037년 83.9%로 급증할 예정이다.

지방대 위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 만큼, 교육부 등 정부 당국에서도 대학 자율화 등 여러 개선책을 마련한 바 있다. 하지만 안현식 회장은 "현 정부는 지난 정부에 비해 오히려 지방대를 위한 정책적 노력은 부족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핑계로 사실상 지방대 문제를 방치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적극 개입' 요구 속 후보들도 공약 제시

2022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 정시모집 권역별 경쟁률 미충족 대학 수. [자료 종로학원]

2022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 정시모집 권역별 경쟁률 미충족 대학 수. [자료 종로학원]

이 때문에 지방 교수·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직접 개입'을 요구한다. 지방대에 대한 지출을 늘리고, 지방대 학생들의 학자금 지원 범위·지원액을 수도권 학생들보다 키우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또한 교육·연구 활동 지원금도 수도권 대학에 집중되기 쉬운 공모 방식 대신 지방대에 포괄보조금 형식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각 지역 인재들이 계속 남을 수 있도록 지역인재 채용 의무를 늘리거나, 수도권 대학 정원 늘리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정원 외 입학'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선 후보들도 지방대를 고려한 공약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혁신도시 공기업과 지방대 간 취업 연계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측은 정원 외 입학 인원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공약을 고려하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공공기관과 지자체의 지역 인재 채용 비율을 늘리겠다는 공약을,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지방대 재정 지원을 늘리고 교육부의 대학평가제도를 폐지한다는 공약을 각각 내놨다.

36개 교수·시민단체 연합회 측은 "이번 문제 제기와 정책 제언이 지방대 문제뿐 아니라 지방의 위기를 개선·해결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국가 전체 발전에도 반드시 요구되는 것인 만큼 대선 후보들이 진지하게 검토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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