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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인의 뜻에 80평생 건 한방기인|민속의학 연구가 김일훈 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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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무릇 시대가 변하면 질병도 변하게 마련이다. 굳이 20세기에 신출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꼽을 필요도 없이 역사 속에서 질병의 패턴이 크게 바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80평생을 조국의 광복과 질병퇴치에 바쳐 온 인산 김일훈 옹(81).
「지리산 도인」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독특한 우주관과 철학·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수년간『우주와 신약』『구세 신방』『신약』등 한의 서를 출간,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현대인을 병들게 하는 2대 중요요인은 공 해독과 화학 약 독이야. 옛 의학서적에는 이같은 독으로 생긴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쓰여 있지 않아.』
한의학과 민간의 단방요법을 집대성,『동의보감』을 남긴 조선조 명의 허 준 선생이나 우리민족의 물과 흙, 의·식·주, 체질을 감안해 중국의 전통의학과 거의 무관하게 독창적인 민족의학을「사상의학」으로 세운 이제 마 선생의 업적을 일단 인정하면서도 김 옹은 선인들의 의서가 갖는 한계성을 지적한다.

<한땐 항일운동도>
『나는 오늘을 사는 사람이므로 오늘날 사람의 병을 고쳐야 해.』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풍채와 광채가 감도는 눈빛을 잃지 않고 있는 그는 눈을 들어 멀리 하늘을 바라본다. 마치 환자의 구제를 숙명처럼 짊어지고 태어난 사람처럼.
함경남도 홍원군 용운면에서 태어난 그의 할아버지는 당시 일대에서 이름높던 명의였던 김면섭 옹.
김일훈 옹은 다섯 살 때 이미『삼국지』『당시』『사시』『강희자전』등을 읽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커 가면서 비가 갠 하늘의 오색무지개를 보고 우주의 비밀과 약 리에 큰 관심을 보였던 그는 그러나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참을 길 없었다.
이 때문에 16세 때 당시 횡포를 일삼던 일본인 아이들 15명을 친구들과 함께 때려 누이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 모화 산 부대(대장 변창호)의 대원으로 각종 전투에 참여했다.
이때부터 해방될 때까지 20여 년 간 그의 삶은 가시밭 길로 접어들었으나 백두산·묘향산·천마산 등의 약초와 더불어 살며 본초 학에 눈을 뜨는 계기를 마련했다.
도피생활로 얼룩진 이 험난한 세월 속에서 그는 1934년 봄 일본경찰에 붙잡혀 3년형을 선고받고 춘천형무소에서 복역 중 1년6개월만에 작업하다 탈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약초 캐며 은둔생활>
조국광복 후인 48년 이승만 대통령을 방문, 한의학과 양 의학을 접목시킨 종합병원의 설립을 건의했으나 미국고문의 반대와 주위의 몰이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 제대로 된 길을 보지 못하는 정치에 환멸을 느껴 지리산기슭의「살구 쟁이」마을에 숨어들어 함지박을 깎으며 약초를 캐고 나름대로 한의학연구에 몰두하며 은둔생활을 했어.』그러나 핵무기 등「살인 핵」이 인류를 위협하고 공해로 병들어 죽어 가는 많은 환자들을 내팽개친 채 자신의 안빈낙도만을 추구할 수 없다는 의식이 그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결국 그는 61년 여름 서울로 되돌아와 영구 법(쑥뜸)등으로 각종 환자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데 전념했다.
서울·부산에서 성혜 한의원·세종 한의원을 열어 난치법의 치료에 도전했다.

<난치병치료 도전>
『암을 비롯한 각종 난치병·고질병도 제대로 치료하면 나을 수 있고 예방도 가능해.』
한방요법과 민간요법이 이른바「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예가 많기 때문에 현대의학 적 관점에서는 그의『구세 신방』을 모두 믿기에는 사실 어려움이 뒤따른다.
「우주는 극냉·극독의 공간으로 찬 것은 물이요, 독한 것은 불이다. 우주가 창조됨에 있어 공·허·극이 삼 소요, 시·초·일이 삼 요다.…」로 시작되는 그의 우주론도 현대인의 지식과 잣대로는 바로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마 선생이『동의수세보원』이란 저서에서 확립한 사상의학이 한동안 세월이 흐른 뒤 동양의학에서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처럼「기인」으로 불리는 그의 이상할 정도로 독특한 한의학체계와 신방이 훗날 업적으로 재평가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81년 겨울 홀연히 도시를 떠나 경남 함양군 함양 읍의 상송림 마을에 자리잡고 앉아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들을 대하는 외에 저술활동을 통해 밝힌 신방에는 각종 약초를 배합하는 것도 있지만 그가 창안한 비법도 적지 않다. 공간색소 중의 약 분자를 합성,「영약」을 만들기 위해 생각해 낸 오핵단도 그 중 하나다.
또 예부 터 민속 약으로 대나무 속에 소금을 넣고 구워 만든「죽염」을 발전적으로 응용, 섭씨1천도 이상의 높은 열로 아홉 번 구워 낸 것도 그가 중요시하는「신약」이다. 죽염에서 비롯되는 죽염간장·죽염된장의 효험도 대단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

<죽염 발전적 응용>
『현재의 과학수준으로 규명할 수 없는 현상·질병들도 숱하게 많아. 그런데도 단지 눈에 금방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되지.』
그가 개발한 신약으로 위장병 등 각종 질병을 고쳤다는 사람들도 많으나, 반면 아무런 효험을 못 봤다거나 오히려 병세가 악화됐다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이 때문에 명의로 그를 평가하는데 인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활인」의 뜻을 품고 일생을 민속의약과 한의학에 바친 점은 사실이다.
죽은 뒤 발표할 계획으로 집필중이라는『신약본초』에는 오핵단·죽염과 같은 생경한 신약보다는 산 속의 약초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여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WHO) 가 각국의 민간요법을 1차 진료에 활용토록 적극 권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의 집요한 연구열은 아무튼 빛을 발하고 있다. <글=김영섭 기자>·사진 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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