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그린 어린이그림책 펴내|생활그림책 연구회장 정연희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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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평범한 어머니들이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아 손수 만든 그림책이 국내는 물론 아시아-태평양지역 22개국에까지 속속 보급될 전망이다.
문학의 바탕이 사뭇 다른 외국의 그림책이 어린이교육용이란 명목으로 우리 가정 속에 버젓이 파고들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토착적」생활그림책을 빛보게 만드는데 주역을 맡은 가정주부 정연희 씨(39).
13명의 회원으로 이뤄진 생활그림책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그는 11∼17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마련된「90서울도서 전 특별전시코너」에서 힘들여 만든 13권의 그림책(한림출판사 간)을 일반에 선보였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선생님인 만큼 이들 어머니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 만든 그림책은 자녀들을 아름다운 꿈과 멋진 상상의 세계인 동화의 나라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게 하는 튼튼한 울타리가 될 거예요.』
정 회장을 비롯한 연구회원들이「좋은 그림책」을 만들어 보겠다고 본격적으로 벼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초.
아이들이 커 가면서 왠지 구멍 뚫리고, 허전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메우기 위해 지난해 9월 롯데 문화센터에서 연「엄마가 만드는 자녀그림책 강좌」에 참여했던 가정주부들이 강사로 나온 그림동화작가 강우현 씨(아세아문화교류연구소장) 의 적극적인 권유로 연구회를 결성, 유네스코아시아문화센터 등의 후원으로 연구회를 만들게 됐다.
회원들 중 미술을 전공한 사람은 세 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순수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처음엔 그림책출판이 어렵게 느껴졌다.『그러나 이야기를 억지로 지으려 하지 않고 집안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의 생활을 그려 나가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고 정 씨는 회상했다.
삶의 언저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은 뒤 못쓰는 헝겊·색연필·크레파스·나뭇잎·돌멩이로 그림을 만들고 이것들을 사진 찍어 나온 그림책들은 아이들로부터 예상 밖의 큰 관심을 끌어냈다.
미혼시절 낙서 비슷하게 글을 써 본 경험밖에 없던 정 씨는 자전거를 좋아하나 의타심이 많은 둘째아들 조성민 군(6)이 펑크난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자신의 힘으로 때워 달리게 했다는 내용의 그림책「네발자전거 쌩 이」를 색지·색연필·그림물감으로 창작해 냈다.
총무 임영순 씨(31)는 회화전공의 솜씨를 살려 주사 맞기 싫어하는 딸 민주(3)가 착한 벌레와 나쁜 벌레의 싸움을 통해 약 먹고 주사 맞을 필요성을 알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책『병원은 싫어요』를 그림물감으로 솜씨 있게 그려냈다.
또 김혜환 씨(33)는 크레파스와 색연필을 이용,『뛰 떼와 또또』라는 그림책을 만들어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숲의 나라에서 쫓겨나 사람나라에서 남매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정 씨는『손과 머리, 그림과 글이 따로 노는 경우 등 어려움으로 1주일 내내 공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하고『앞으로 매년 한 권 씩 출판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모든 엄마들이 자녀들에게 그림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생활그림책연구회(631-1666)는 뜻 있는 어머니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그림책의 좋은 점·나쁜 점을「모니터」하는 데까지 활동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정 씨는『출판물의 수익금으로 문화공백지대인 국내 산간벽지·고아원 등에 우선 책을 보내고 앞으로 영어 책으로도 발행, 중국·일본·방글라데시·인도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각 국가 어린이들에게도 보급할 예정』이라며『은행·법원 등 공공기관도 이 그림책들을 구입, 흥미위주의 주간지·화보대신 비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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