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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소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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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문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소주(燒酒)의 소(燒)자는 ‘불사를 소’다. 소주가 불을 때서 끓여 만드는 증류법을 활용한 술이어서다.

무엇을 불사를까. 전통방식의 증류식 소주는 누룩과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밑술부터 담가야 한다. 그렇게 담근 술이 알맞게 익으면 항아리 안에 용수를 박아 걸러 뜬다. 이 술을 소줏고리에 넣고 불을 때 한 방울씩 모은 것이 소주다. 경북 안동에서는 청주를 소줏고리에 넣고 끓여 소주를 만든다. ‘어부가’를 지은 농암 이현보(1467~1555) 선생의 종택에서 만드는 ‘일엽편주’는 소주 1병을 만들기 위해 청주 5병이 들어간다.

소주를 발효해 증류하는 과정에 곡식이 들어가다 보니 조선시대에는 종종 금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영조 재위 52년간 40년이 금주령 시대였다고 한다.

1965년 처음 등장한 희석식 소주는 전분이나 당분이 함유된 물료를 발효시킨 ‘주정’을 불사른다. 6·25 전쟁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정부가 그해 양곡관리법에 따라 순곡주 제조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희석식 소주는 대량생산이 용이해 소주가 대중화하는 계기가 됐다. KBS 다큐멘터리 ‘한국인의 술상’에 출연한 배우 최불암은 ‘소(燒)’자를 이렇게 해석한다. “아픈 사연이 좀 많아. 연기하고 나오면 술집으로 달려갔지. 가슴이 탔던 뜨거움이 쉬익하고 불 꺼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어” 그가 수사드라마의 전설인 MBC ‘수사반장’(1971~1989)에 출연하던 시절이다.

‘소주=서민술’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다 보니 주류업계에선 가격 인상 대신 도수를 낮춰 원가를 절감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희석식 소주는 물을 첨가해 알코올 농도를 조정한다. 소주의 원료인 주정 대비 물의 양이 늘어나면 원가가 절감되는 식이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대한주정판매는 지난 4일부터 주정 가격을 7.8% 인상했다. 2012년 이후 10년 만이다. 주정 값이 오르면서 소주 가격 인상이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나온다. 저도주 바람이 다시 불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 안도현은 1997년 ‘퇴근길’이라는 단 두 줄짜리 시에 팍팍한 삶으로부터 위로받고 싶은 심정을 집어넣었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아무리 주머니 사정이 답답해도 불타는 속을 달래줄 소주 한 잔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