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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콩쿨 공식 깼다…로잔 진출한 일반고 '라일락 요정' 비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6일 세계적 발레 콩쿠르 무대인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 무대에서 '라일락 요정' 작품을 선보이는 최연서 학생. [Prix de Lausanne, ©Gregory Batardon]

지난 6일 세계적 발레 콩쿠르 무대인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 무대에서 '라일락 요정' 작품을 선보이는 최연서 학생. [Prix de Lausanne, ©Gregory Batardon]

“우아하게 움직이면서도 몸 전체의 밸런스를 확실히 잡는군요. 단아(serene)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무대였어요.” “폴드브라(port de bras, 팔의 움직임)가 부드럽고 앞으로 대단한 잠재력이 있어 보입니다.”  

한국의 만 15세 발레리나 최연서 양에 대해 내로라하는 발레 지도자들이 쏟아낸 찬사 중 일부다. 지난주 진행된 세계 발레 꿈나무들의 등용문,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 콩쿠르에서다. 지난 6일 막을 내린 콩쿠르에서 연서 양은 전 세계에서 선발된 81명의 무용수 중 20명만 뽑힌 파이널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명 중 연서 양을 포함한 6명이 한국 국적으로, 단일 국가 참가자로는 가장 많았다. 파이널리스트 중 장학금 등 수상자로 호명된 한국인 참가자는 없었지만 한국 발레의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다. 진행을 맡은 드레스덴 팔루카 댄스 학교의 제이슨 비치 학장은 “한국 학생들이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코멘트하기도 했다.

올해 프리 드 로잔 파이널리스트들. 20명 중 6명이 한국인이었다. [Prix de Lausanne, ©Gregory Batardon]

올해 프리 드 로잔 파이널리스트들. 20명 중 6명이 한국인이었다. [Prix de Lausanne, ©Gregory Batardon]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참가 학생들 모두 최선을 다한 아름다운 무대를 펼쳤다. 그 중에서도 연서 양은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무용의 엘리트 코스인 예중-예고가 아닌,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취미 발레인들과 함께 학원을 다니며 전공을 하고 있어서다. 콩쿠르 일정이 끝난 뒤 로잔에 머물고 있는 연서 학생을 영상 통화 등으로 지난 7일 만났다.

축하합니다. 소감 들려주세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끌어내서 보여드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다 보니 실력도 더 늘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해외 발레단에 입단하는 게 목표인데 (만 15세는 발레단 입단하기엔 연령 미달이라) 경험을 쌓자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아서 감사해요. 파이널리스트 된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감사해요. 수상자로 호명 안 되어서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슬프지 않았어요. 잘하는 사람들 진짜 많았거든요. 파이널리스트가 됐다는 것도 안 믿겨요.”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많이들 궁금해하는 점인데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예술중고가 아니라 일반 취미발레인들도 다니는 H댄스 센터 소속이라는 점이 화제였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공을 결심했는데요, 선생님들께서 처음부터 ‘입시가 아니라 해외 발레단 입단을 목표로 하자’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예중과 예고를 안 갔어요. 제 (일반고) 친구들은 발레 잘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웃음).”
최연서 학생의 인스타그램. [Instagram]

최연서 학생의 인스타그램. [Instagram]

연서 학생을 지도하고 로잔까지 인솔한 강준하 선생님은 중앙일보에 “연서를 러시아 (발레 학교) 바가노바 학생처럼 만들고 싶었다”며 “이번 로잔에서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스쿨부터 (영국의) 로열 발레 스쿨, (미국) 보스턴 발레스쿨 등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연서는 어느 곳을 가든 잘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발레는 어떻게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핑크색 발레복이 너무 예쁜 거에요. 초등학교 1학년 때 그 옷 입고 싶어서 시작해서 취미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하다가 4학년 때 전공 시작했어요.”
팬데믹 와중에 열린 콩쿠르라서 힘든 점도 많았을 텐데요.  
“(지난해처럼) 영상으로 진행할지, 원래대로 로잔으로 다들 와서 진행할지 결정이 조금 늦게 날 수밖에 없어서, (로잔에 올) 준비를 한 달도 못했거든요. 하지만 여기 와서 (출전자들끼리도) 많이 배웠어요.”  
중앙일보 독자를 위한 최연서 학생의 새해 인사.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독자를 위한 최연서 학생의 새해 인사. 전수진 기자

로잔은 단순히 한 번의 무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기본 연습인 바워크(barre work)부터 무대 리허설까지 코칭도 세세히 들어가는 게 특징인데, 연서 학생은 특히 지적받은 걸 스폰지처럼 받아들이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긴장 진짜 많이 했어요. 선생님께서 지적해주신 걸 어떻게 하루만에 고칠까 싶은 거에요. 계속 머리 속으로 연습했어요.”  

연서 학생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 중 우아함이 상징인 라일락 요정 배리에이션을 선택했다. 로잔 첫 리허설 무대에서 지도자가 부드러운 시선 처리 및 페르메 동작 등의 속도를 지적하자, 최종 무대에선 정확히 지적 사항을 소화해냈다.

연습이 막힐 때는 어떻게 하나요?  
“안 되는 동작이 안 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계속 반복만 하면 잘못된 방법을 반복하는 거니까 저는 대신 선생님께 질문을 하거나, 영상을 찾아봐요. 라일락 요정 캐릭터 하나만 해도 무용수들마다 다 다른 무대를 선보이니까 많이 볼수록 공부와 연구가 많이 돼요. 영상을 저장해서 슬로우 모션으로도 보고, 같은 동작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는지를 열심히 봐요.”  
발레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의 연서양. [최연서 학생 제공, 무단 전재 및 도용 금지]

발레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의 연서양. [최연서 학생 제공, 무단 전재 및 도용 금지]

연서 학생이 다니는 학원의 고바야시 하나코(小林華子, 한국 국적) 대표는 본지에 “연서는 본인의 영상도 계속해서 모니터링하며 매일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학생”이라며 “발레 연습엔 끝이 없는데 연서는 앞으로도 어디 발레단에 가든 계속 연습과 연구를 할 학생이고,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될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1년 뒤, 5년 뒤, 10년 뒤의 연서 학생의 어떤 모습일까요?  
“(잠시 생각하다) 1년 뒤엔 (이번 로잔 콩쿠르를 통해)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스쿨에서 열심히 발레를 배우고 있을 거고요, 5년 뒤엔 원하는 발레단에 들어가 있으면 좋겠는데 아마도 (입단 후 대개 첫 코스인) 군무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10년 뒤에는 그 발레단에서 춤을 추고 있으면 좋겠어요.”  
결국, 1년 5년 10년 뒤에도 계속 발레를 하고 싶은 거군요.  
“앗 진짜 그러네요(웃음). 연습만 할 때는 물론 힘이 들어요. 내가 발레를 좋아하는 게 맞나 싶을 때도 있긴 했어요. 하지만 공연이나 콩쿠르 무대에 서면요, (목소리 톤이 높아지며)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그냥 계속, 무대에 서고 싶어요.”  
최연서 학생의 무대. 우아한 라인이 독보적이다. [최연서 학생 제공, 무단 전재 및 도용 금지]

최연서 학생의 무대. 우아한 라인이 독보적이다. [최연서 학생 제공, 무단 전재 및 도용 금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요?
“괜찮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선 부모님, 저를 지원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박재우 선생님, 하나코 선생님, 강준하 선생님 등도 꼭 감사 말씀 써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다 선생님들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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