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코로나 故人을 기리며 그의 글을 옮깁니다…K-발레의 꿈, 로잔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뉴스 ONESHOT’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 발레 무용수, 로베르토 볼레(왼쪽)와 영국 로열발레단의 멜리사 해밀턴의 2인무. [중앙포토]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 발레 무용수, 로베르토 볼레(왼쪽)와 영국 로열발레단의 멜리사 해밀턴의 2인무. [중앙포토]

“공중에 계속 떠 있을 수는 없지만, 자주 떠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지난 4일 유명을 달리한 고(故) 정형모 중앙일보 문화 에디터가 2018년 11월14일 쓴 글의 마무리입니다. 중앙SUNDAY의 자랑이었던 S매거진의 마지막 호에 부치는 편집장의 메시지였습니다. 고인이 붙인 글의 제목은, “점프는 계속됩니다.”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부터 김기민, 데니스 로드킨 등 내로라하는 발레 무용수들의 점프를 언급하면서 S매거진 편집장으로서의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죠. 아무리 훌륭한 발레 무용수라도 공중에 영원히 떠있을 없고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자주, 아름답게 떠있으려고 하는 점에서 발레 무용수들이 아름답듯, 기자로서의 고인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그의 점프를 멈췄습니다. 황망한 소식을 접했던 때, 저는 현재 스위스 로잔에서 진행 중인 세계적 발레 콩쿠르,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의 실황 중계를 보고 있었습니다. 15~18세 발레 남녀 꿈나무들이 뽑혀 기량을 겨루는, 일종의 발레 청소년 올림픽입니다.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는 국립발레단의 강수진 단장도, 아시아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 무용수인 에투왈이 된 박세은 씨도, 로잔이 세계 무대 등용문이었습니다.

5일(현지시간) 끝나는 세계적 발레 콩쿠르인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엔 올해도 다수의 한국인 출전자들이 기량을 겨루고 있습니다. 사진은 그 중 한 명인 김시현 학생. EPA=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끝나는 세계적 발레 콩쿠르인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엔 올해도 다수의 한국인 출전자들이 기량을 겨루고 있습니다. 사진은 그 중 한 명인 김시현 학생. EPA=연합뉴스

한국인 남자 발레 무용 꿈나무들의 기량도 눈부십니다. 사진은 이승민 학생. [Prix de Lausanne official photograph]

한국인 남자 발레 무용 꿈나무들의 기량도 눈부십니다. 사진은 이승민 학생. [Prix de Lausanne official photograph]

로잔은 하지만 올림픽과는 결이 좀 다릅니다. 메달 획득 여부나 색상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니라서 입니다. 경연 무대만으로 평가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기본 연습인 바 워크(barre work)부터 센터 워크, 등 클래스를 수 일에 걸쳐 진행합니다. 주최 측에서 엄선한 세계적 지도자들의 코칭을 받으며 성장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그 과정도 심사에 포함이 되는 거죠. 약 1분30초에 달하는 무대만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기본 연습 과정부터 지도자들의 말을 얼마나 빨리, 또 적극적으로 소화해내는지, 동료 무용수들과의 케미스트리는 어떤지를 다 봅니다.

연습 과정까지도 로잔에선 중요합니다. 지도자가 그때그때 내주는 순서를 정확히, 열심히 소화해내는 것도 중요한 능력입니다. 턴을 워낙 빨리 돌고 있어서 이렇게 찍혔네요. EPA=연합뉴스

연습 과정까지도 로잔에선 중요합니다. 지도자가 그때그때 내주는 순서를 정확히, 열심히 소화해내는 것도 중요한 능력입니다. 턴을 워낙 빨리 돌고 있어서 이렇게 찍혔네요. EPA=연합뉴스

로잔에서의 한국 학생들의 도약은 매년 눈부십니다. 지난해 로잔 콩쿠르의 여성 참가자 중 1위는 당시 윤서정 학생이었고, 올해도 여러 명의 학생들이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는 중입니다. 5일 최종 무대를 마치고 수상자들이 발표가 될 예정인데, 한국인 학생들의 선전이 기대됩니다. 실황 중계 해설을 맡은 제이슨 비치는 “한국 학생들이 특히 뛰어나고 인상적이다”라고까지 언급하더군요. 특정 국적을 이렇게 언급하는 것은 이례적인 편입니다.

개인 경연 부문에선 너무 잘하려다 보니 넘어지는 학생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곧바로 다시 일어나 음악에 맞추어 끝까지 무대를 완수했고, 현장에 있는 관계자들에게 더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비치와 함께 진행을 한 신시아 라바론 전 발레리나는 “넘어졌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높게 뛰기 위해서 넘어질 가능성을 무릅쓰고 높이 뛰려 했다는 의미”라고 격려했습니다.

관련기사

고 정형모 에디터가 극찬했던 이탈리아 출신 발레리노, 로베르토 볼레. 고인은 그의 높고도 오랜 점프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세상엔 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공중에 점프해 다리를 일자로 뻗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볼레도 처음부터 그렇게 잘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공중점프를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볼레만큼은 하려고 해야 할 겁니다.” 넘어져도 괜찮으니 살아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점프를 계속해야 하겠죠. 고인의 말처럼 말입니다.

로잔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뛰는 최연서ㆍ문희원ㆍ박하민ㆍ김시현ㆍ김희원ㆍ최유정ㆍ이수민ㆍ심지은ㆍ이지나ㆍ김주아ㆍ박건희ㆍ문정우ㆍ이승민 학생들, 그리고 세계 모든 참가자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과 유족께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