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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백유의 인정불가

쇼트트랙 부진, 판정 탓만 할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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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올림픽의 편파 판정을 비판하는 박한슬 작가의 글에 대한 성백유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관리위원의 답글입니다.

자타 공인 세계 최강의 실력을 보유했던 대한민국 쇼트트랙이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대회에서 크게 부진하다. 한국은 지난 5일 2000m 혼성계주 준준결승에서 183cm의 장신 유망주 박장혁이 넘어지면서 조기 탈락했다. 또 7일 여자 500m 준준결승에서 에이스 최민정이 넘어져 탈락한 데 이어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기대했던 황대헌이 실격돼 결승에 한 명도 오르지 못했다.

쇼트트랙이 올림픽 빙상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올림픽 때부터다. 이후 한국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대회까지 쇼트트랙 한 종목에서만 금메달 24개, 은메달 13개, 동메달 11개를 획득했다.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성적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대회 한국 목표는 애초에 쇼트트랙에서 단 하나의 금메달이었다. 물론 이런 사실을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빙상인들은 4년마다 돌아오는 올림픽으로 국민 관심이 높아지면 예외 없이 파벌 다툼을 했다. 가장 큰 파도는 홈에서 벌어진 평창 올림픽 때 닥쳐왔다. 개막 직전 터진 심석희 폭행사건과 선수촌 이탈 이후 회장사인 삼성에 반대하는 일부 경기인들은 정치인을 싸움에 끌어들였다. 후원사를 퇴출한 것으로도 모자라 대한빙상경기연맹을 사고 단체로 만들어 2년 반 동안 관리단체로 운영토록 했다. 대한체육회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여론 눈치만 보며 올림픽에 준비할 시간을 날려 보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정상화한 것은 2020년 여름 이후다. 이번 대회 단장인 윤홍근 회장의 BBQ를 후원사로 영입해 올림픽을 준비했지만, 과거 우리 선수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힘과 기술, 그리고 전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지난 7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8강전 경기에서 최민정이 넘어지고 있다.[뉴스1]

지난 7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8강전 경기에서 최민정이 넘어지고 있다.[뉴스1]

쇼트트랙은 좁은 곡선주로에서의 스피드가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다. 때로는 몸과 몸이 부딪치기도 하고 넘어져 뜻밖의 짜릿한 승부가 나기 때문에 관전의 묘미가 있다. 공기 저항을 줄이려 다른 선수 뒤에서 따라가다 막판에 스피드를 내 역전극을 펼치기도 한다. 또 개인 종목이긴 하지만 경쟁자의 추격을 막아주는 동료 도움이 필요한 독특한 스포츠다. 그래서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9개의 쇼트트랙 세부종목 중 이제 3개 종목이 끝났다. 대한민국이 강세인 1500m, 계주 등 장거리 종목이 남아 있기 때문에 목표 달성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꼭 짚어볼 문제가 있다.

7일 경기를 복기해 보면 여자 500m 최민정과 남자 1000m 박장혁 두 명이 넘어져 탈락했다. 베이징이 워낙 춥기 때문에 단단한 얼음은 빙질을 떨어뜨린다. 정수를 해도 여전히 수질이 좋지 않아 넘어지는 선수를 양산한다. 기술로 승부하는 체격이 작은 우리 선수들에게는 더욱 불리하다.

황대헌은 억울하다. 판정 시비로 국내 여론이 들끓는 이유다. 그럼에도 나는 오히려 한국의 전략 실수를 지적하고 싶다. 두 명의 중국 선수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왜 황대헌이 처음부터 질주하지 않고 무리한 몸싸움을 했는지 의문이다. 좀 더 냉정하게 보자. 헝가리와 중국의 결승 다툼은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더구나 헝가리 선수는 엄마가 중국계. 그들끼리의 경쟁이었다. 헝가리 선수는 결승점에 들어갈 때 자기 코스로 직진하지 않고 중국 선수 추월을 막기 위해 안쪽으로 레인 변경을 했다. 심판은 이걸 지적한 것이다. 중국 선수는 자신의 진로를 막으려는 헝가리 선수를 견제하기 위해 손으로 밀쳤고, 그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중국은 한국을 넘기 위해 지난 4~5년 동안 우리 지도자들을 대거 스카우트했다. 중국 대표팀을 이끄는 김선태 감독과 안현수 코치는 연맹의 관리단체 운영 때 중국으로 갔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 혼성계주가 끝나고 난 뒤 우리 선수 몇 명이 편파 판정 주장을 SNS에 올리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 심지어 그들은 경기에 뛰지도 않은 선수들이다. 선수 관리에 실패한 케이스가 아닌지 묻고 싶다. TV 중계진들도 정확한 분석보다 흥분한 목소리로 심판 판정 탓만 하면서 중국에 대한 반감을 선동하고 있다. 전에는 없던 일탈적 행동이다.

이번 국가대표팀은 선수 폭행 이력이 있거나, 품행에 문제가 있는 지도자를 엄격하게 배제하다 보니 감독 없이 코치들이 지도하고 있다. 장비 코치도 없다. 경기인들끼리 서로 물고 뜯는 이전투구를 한 결과다. 설상가상, 선수들끼리도 틈이 벌어져 정예 멤버를 꾸리지 못했다.

태극기 앞에서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고, 정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최근 그러지 못했다. 국내대회에서 걸핏하면 ‘짬짜미’라고 상대방을 헐뜯고 싸웠다. 올림픽에서 경쟁국 선수들이 우리의 추월을 막을 때에도 ‘짬짜미’라며 손을 놓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