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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한슬이 고발한다

'반중' 불편한 고매하신 분들께…이건 중국 혐오가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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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 약사 출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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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 준결승에서 실격 판정을 받은 황대헌(왼쪽)과 이준서. 중국의 런 쯔웨이는 결승에서 헝가리 선수의 실격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 준결승에서 실격 판정을 받은 황대헌(왼쪽)과 이준서. 중국의 런 쯔웨이는 결승에서 헝가리 선수의 실격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이번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한국 청년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고매하신 분들께서는 이런 상황이 꽤 불편하신 모양입니다. 한 정의당 청년 정치인은 개막식 한복 논란이 "조선족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라 하고, 또 다른 여러 더불어민주당 의원님들은 “표를 위해 (국민의힘이) 반중 정서를 부추긴다”라거나 “중국 혐오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얄팍하고도 위험한 의도”라는 식으로 중국에 대한 비판을 되레 힐난하셨죠.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청년들의 이유 있는 반중을 대체 왜 ‘혐오’라고 단정 짓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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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아닌 불공정 비판

청년층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사실 뿌리가 깊습니다. 이번에 불거진 쇼트트랙 판정 논란이 아니라도, 또래 세대에게 중국은 ‘반칙 국가’로 인식돼온 지 오래입니다. 어디 스포츠뿐인가요. 게임을 비롯해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은 반칙을 해왔거든요. 공식 대회에 참가한 프로게이머조차 그런 반칙을 서슴없이 자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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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설 무렵 배틀그라운드 개발사에서 개최한 한중전에서 국내 대표 게이머들은 중국 참가자의 불법 프로그램(핵) 이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더 화가 나는 건 개발사가 중국 선수들에게 찍소리도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올림픽으로 치자면 심판을 매수해 편파 판정하는 것보다 더 심한 일인데도, 중국에서 게임을 팔아야 한다는 이유로 중국 눈치만 본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최근 올림픽 논란과 관련해 ‘경제적 실용외교’를 해야 한다며 중국 눈치 보는 집권 세력에게서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사소한 게임 문제라고요? 우리 또래들은 최근 홍콩의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중국 횡포를 생생히 목격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의 시발점이었던 이화여대 시위에선 운동권 민중가요 대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나왔죠. 이 노래는 홍콩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도 똑같이 불렸습니다. 홍콩 내 언론 탄압을 비판하고 자유와 민주화를 염원하며 부른 이 노래는 중국 공안의 군홧발 아래서 짓밟혔습니다. 국내 MZ 세대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 배우가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뮬란'을 보이콧했고, 그 움직임이 드라마 '조선구마사' 퇴출 사태까지 이어졌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 그리고 홍콩에 대한 폭압을 비판하는 게 인종 혐오인가요? 이건 중국인이라는 인종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반칙에 대한 비판입니다.

청년의 공정 문제를 왜곡하는 이들

청년들이 하나 된 목소리로 외치는 반중을 간편하게 혐오라고 재단하는 걸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공정을 요구하는 청년 목소리를 매번 왜곡하고 축소해 거꾸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이들은 왜 자꾸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요?

지난 평창 올림픽 당시 남북 단일팀.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평창 올림픽 당시 남북 단일팀.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중앙포토

가령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북 단일팀을 두고 빚어진 세대 간 갈등, 기억하십니까. 남북 단일팀 구성은 중국이 저질러온 것과 유사한 일종의 반칙이었습니다. 최소한의 절차적 공정이라도 지키자는 청년층 반발에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부의 (남북) 대화 노력에 딴지를 건다”며 비난했습니다. 무너진 공정성에 대한 비판을 갑자기 이념적 공격으로 틀어버린 겁니다. 남북 화해 무드 조성을 위해 정부가 갑자기 단일팀 카드를 빼 들어 출전 기회를 잃게 된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를 동정하는 목소리를 전쟁 선동으로 둔갑시킨 겁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7일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삭제한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7일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삭제한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 사람이 있습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입니다. 김 의원은 쇼트트랙 편파 시비로 여론이 끓어오르던 지난 7일 밤 “국힘이 집권하면 매일매일이 중국올림픽 보는 심정일 겁니다. 불공정이 일상이 될 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겼고, 거기에 같은 당 김남국 의원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좋아요’로 호응했습니다. 공정한 경기 운영이라는 절차적 공정이 무너졌다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나 봅니다. 선수들의 아픔을 정치적 잇속을 챙길 기회로 삼으려 한 걸 보면요. 문재인 정부와 가까운 한겨레 김의겸 기자가 권력을 좇아 청와대 대변인으로 갔다가 수십억대 부동산 투기가 드러나 물러나고, 그거로도 모자라 여당의 ‘꼼수’ 비례위성정당의 국회의원으로 다시 당선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니, 어찌 보면 놀랄 일도 아니네요. 애초에 그들만의 ‘대의’를 위해 ‘절차적 공정’ 따위는 쉽게 내던지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정에 민감하면 능력주의인가

절차적 공정을 얘기하면, 늘 따라붙는 비판이 있습니다. 시험 제일주의나 능력주의가 MZ 세대의 공정이냐는 식의 힐난이죠. 그런데 청년 세대는 바보가 아닙니다. 절차적 공정만 지켜진다고 불평등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알고, 그 절차에 진입하기 전에 이미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청년들이 ‘절차적 공정’에 민감한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저희에게 남은 게 사실상 그것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국가 발전기에 상대적으로 쉽게 자리를 잡고, 지금까지도 그 자리를 꽉 움켜쥐고 계시는 분들께서는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모두가 다 같이 가난하고 어렵던 시기는 이미 끝났습니다. 우리 또래는 성장기에서부터 ‘극히 일부’의 부잣집 자녀를 제외하곤 서로서로 비슷하던 과거의 교실과 달리 소득수준에 따라 생활 습관부터 학업 수준까지 켜켜이 나뉘어있는 교실을 살고 있습니다. 일단 그 현실을 인정하고 살아가다 보니, 최소한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룰이 지켜지지 않으면 영원히 태어난 계층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암묵적인 공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능력주의인가요, 아니면 시험 제일주의인가요?

모두 지켜야만 하는 최소한의 룰 하나만큼은 지키려는 감각. 그 영역 하나에서만이라도 공정하길 바라는 감각. 저는 그것이 우리 또래의 공정함 추구의 기저에 있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절대로 혐오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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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별별시각]올림픽은 중국 선전무대 위 꽃병일 뿐

박한슬 작가 글에 성백유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관리위원.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소장이 보내온 답글 형식의 칼럼을 붙입니다. 글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의 박한슬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