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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월말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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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명절 연휴 첫날, 가족 아닌 여자 여섯이 카페에서 만났다. 그래도 명색이 명절이니까 우린 가족 얘기를 했다. 겨우 덮어둔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처럼 뚜렷해져 가족 안에서 벌어진 일을 하나둘 발설하기 시작했다. 20세기 트리에스테의 산마르코 카페는 클라우디오 마그리스가 무명인들의 역사를 기록한 장소였고,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작품이 쓰인 곳이며, 2022년 광화문의 카페 이디야는 납작하게 눌린 기억 위의 무거운 돌을 함께 치워버린 곳이다.

“아빠가 나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성폭행했어. IMF가 터져 엄마가 시장에서 일하고 실직한 아빠가 우리를 돌봤는데, 그러다가 만졌어. 중3 때 내 친구가 대신 경찰에 신고했는데 아빠가 끌려가지 못하게 내가 막았어. 네 살짜리 막내한테 아빠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사촌 오빠가 옷을 벗기고 만졌어. 스무 살 이후로는 명절 때 큰집에 안 가.” “나도 아빠가 나를 성폭행해서 가족이랑 안 만나는데, 결혼한 사람마저 나를 때려서 이혼하곤 명절에 혼자 지내. 오래 다닌 교회도 남편이 나가니까 난 못 가고.”

친족성폭력 피해여성들 모임
확성기 없이 30분간 침묵시위
함께 글도 쓰며 아픔 보듬어

명절 때 가장 아프게 가족과 만날 수 없는 이들은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이다. 지난 설 연휴 광화문 사거리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돌아와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속풀이를 했다(나는 이들 몇 명의 글을 책으로 펴내면서 비정기 멤버가 됐다). 그러면 기억들이 윤곽을 띠며 의미를 되찾을 뿐 아니라, 먼저 기억을 직면한 이들은 나중에 모임에 합류한 이들을 보듬어줄 수 있다. “하윤씨, 기억날 때마다 글을 써. 그게 방아쇠가 돼서 당장은 더 힘들 거야. 그래도 나중엔 내가 당한 일을 거리 두고 볼 수 있게 되거든.” 50대가 돼서도 20대에 남동생에게 당한 성폭력 문제를 여전히 풀려고 노력 중인 ‘희망’씨의 조언이다. 다들 생업에 매달리는 처지지만, 이들이 시위하고, 자조 모임을 가지며, 상담받고, 글쓰기 훈련을 하는 이유는 모두 가족과 친지 때문이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리는 이 모임의 지침은 다음과 같다. 각자 피켓을 만들어 12시 광화문에 집결. 발열 체크하고 자리 잡은 뒤 30분간 침묵시위. 한 사람이 시위자들의 현장을 사진으로 남기고 시민들에게 전단지 배포. 경찰이 접근해도 두려워 말 것. 젊은 경찰들도 늘 무언으로 지지하는 마음을 표함. 얼굴이 노출되는 게 꺼려지면 피켓으로 가릴 것.

지나가는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 바쁜 걸음인데도 뜻밖에 외면하지 않고 눈길을 준다. 어린 자녀와 함께 초록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향해 달리던 엄마는 우리 앞을 뛰던 와중에 고개를 돌려 피켓의 문구를 하나하나 정독한다. 반대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20대 여성도 휴대폰으로 피켓을 촬영하면서 관심을 표한다. 시민들의 70%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 전단지를 받고는 읽으면서 길을 걷는다. 이 전염병의 시절에 경계하기보다는 ‘서로 이어져 있다’는 감각을 전해준다. 청중이 없는 무언극이 되지 않아 다행이다. ‘가족이 가해자’라는 피켓을 열심히 읽는 남성들은 자신과 동년배였을 그 가해자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우리는 확성기도 없이 침묵시위를 하는 중이라 다른 시위자들처럼 쩌렁쩌렁함으로 행인들을 사로잡지 못한다. 우리는 겨우 내가 당한 일을 한 문장으로 적고 시위를 마칠 때 한마디 외친다. “친족성폭력 공소시효를 폐지하라.”

까만 뿔테 안경을 쓴 귀엽게 생긴 생존자 김민지씨와는 몇 번 봤다고 벌써 정이 들어 손잡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녀는 어릴 때의 성폭력 기억 탓에 도무지 학업에 집중 못 해 여러 대학을 옮겨다녔고, 서른두 살이 된 올해야 대학을 졸업한다. 처음 만난 생존자 하윤씨도 국제학을 전공한 것이 해외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찾아 국내 생존자들에게 힘을 줄 기반이 된다며 기뻐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서 황정은 작가의 『일기』를 사서 읽었다. 버스는 흔들리며 달리는데 눈은 한 단락에 멈춰 요지부동이다. “내 사촌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몸을 도구 삼아 놀았다. 어른들이 없는 공간에서 그는 내 몸을 만지고 자기 몸을 내게 만지라고 요구하면서… 그때 나는 일곱 살이었다.” 불현듯 그녀의 『연년세세』 속 문장들이 왜 그리 날카로운 윤리의식을 지녔는지 짐작이 됐다. 그 많은 이야기가 각자의 마음속에서 연결되자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뻔한 말을 그만두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겹침 속에서 더 힘 있고 좋은 문장들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우리 생존자들은 “그 자체로 강화된 기억의 한 형태, 증거의 한 형태”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