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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찾는데 뭔 상관" 이런 보이스피싱 피해자 구한 '코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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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이미지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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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담당자랑 통화했다니까요. 절대 보이스피싱 그런 거 아니에요.”
지난달 13일 경기도 김포시의 한 은행. 60대 여성 A씨의 날 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액을 현금으로 찾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은행원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자 A씨가 따지고 나선 것이다. A씨는 ‘코로나 상생지원금 저금리 정부지원금 대출’을 받기 위해 돈을 인출했다고 했다. “이자가 싼 정부 대출로 갈아탔는데 이중 대출이 됐다고 해 기존 대출금을 갚으려고 인출한 것”이라면서다. A씨가 보여준 문자 메시지와 통화내역 등을 본 경찰과 은행원은 단박에 보이스피싱 사기임을 알아챘다. 하지만 A씨는 “내가 돈을 갚지 못해서 피해를 보면 책임질 것이냐”고 으름장을 놨다. A씨가 마음을 돌린 것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이 설치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휴대전화에 ‘시티즌 코난’ 앱을 설치하자 악성앱 10여개가 발견됐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시티즌 코난 

‘시티즌 코난’이 화제다.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해 경찰대 스마트치안지능센터가 지난해 9월 출시한 악성앱을 탐지하는 앱이다. 지난달 초 방영된 JTBC 예능 ‘다수의 수다’에 출연한 현직 경찰관이 “경찰이 개발한 보이스피싱을 예방할 수 있는 앱”으로 소개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포경찰서 김서윤 경사. 경기남부경찰청

김포경찰서 김서윤 경사. 경기남부경찰청

‘시티즌 코난’에 대한 아이디어는 김포경찰서 김서윤(35·여) 경사가 제안했다. 2010년 경찰에 입문한 이후 절반을 보낸 수사과 경험이 반영됐다. 담당한 사건 대부분이 보이스피싱 피해였다.
수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치밀하고 교묘해졌다.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을 사칭한 범행도 여전하지만, 요즘은 ‘소상공인 긴급 경영자금’ ‘민생지원대출’ ‘재난지원 긴급 대출’ 등 실제로 정부가 추진하는 지원사업의 대상자라고 속인다. “1~3%의 저리 대출이 가능하다”며 “곧 예산이 소진되니 빨리 신청해야 한다”는 안내에 급전이 필요했던 서민들이 주로 피해를 보았다.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는 피해자들을 조사하면서 김 경사의 마음도 아팠다. “빨리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하지만 쉽지 않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대부분이 해외에 머물며 국내의 수거·인출책을 통해 계좌로 입금받아서다. 이들을 일망타진하고, 피해금을 회수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피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증거' 보여주려고

예방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경찰은 각 은행에 500만원 이상 현금을 인출하는 고객은 무조건 경찰에 통보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포통장을 이용하던 보이스피싱 조직이 수사당국의 단속이 강화되자 피해자에게 직접 현금을 수거하는 방식으로 범행 수법을 바꾼 점을 이용한 것이다. 거액을 인출한 이들을 설득해 피해를 예방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닥쳤다. 피해자 상당수가 자신이 보이스피싱을 당한 사실을 믿지 않았다. 김 경사는 “시중 은행과 실제 정부가 추진하는 지원 사업을 언급하고,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악성앱을 설치해 피해 여부를 확인하려는 전화까지 해킹하기 때문에 사기라고 알아채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포경찰서 이창수 수사과장(왼쪽)과 김서윤 경사. 경기남부경찰청

김포경찰서 이창수 수사과장(왼쪽)과 김서윤 경사. 경기남부경찰청

이에 김 경사가 떠올린 것이 컴퓨터 등에 쓰이는 바이러스 탐지 기능이다. 악성앱이 설치된 것을 직접 보여주자는 것이다.
김 경사의 아이디어에 날개를 단 사람은 이창수 수사과장(54·경정)이다. 이 과장은 “출동한 경찰관이 설득해도 ‘내 돈 내가 찾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항의하는 시민도 많고, 일부는 ‘내가 쓸 돈’이고 경찰관을 속이고 사기단에 돈을 전달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며 “시민들에게 보이스피싱 악성앱이 설치된 것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예방하려면…의심, 또 의심 

김포경찰서는 지난해 5월 앱 개발업체 '인피니그루'의 도움을 받아 '피싱아이즈 폴리스' 앱을 개발했다. 출시 4개월 만에 44건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했다.

시티즌 코난 앱 홍보물.

시티즌 코난 앱 홍보물.

이 ‘피싱아이즈 폴리스’를 대중화시킨 것이 시티즌 코난이다. 검사 버튼을 누르면 휴대전화에 은밀하게 설치된 악성앱을 찾아 삭제까지 원스톱으로 해준다. 보이스피싱 사기가 빈발하는 지역 이용자에게 푸시 알림을 보내는 기능도 있다. 현재까지 58만명이 다운받았다고 한다.
김 경사는 보이스피싱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무조건 의심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개인정보나 대출을 요구하는 전화는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며 “사실 확인을 위한 전화를 할 때도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를 빌려서 해당 기관에 연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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