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정기의 소통카페

우리가 바라던 게 이런 모습이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초유의 행진이 그칠 줄 모른다. ‘초유’는 “처음으로 있음”이라는 의미다. 이번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터졌다. 대통령이 상임위원을 다시 위원으로 재임명하는 초유의 인사가 선관위 1-9급 직원과 전국 17개 시·도 지도부의 초유의 집단 항명에 부딪쳐 좌초되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선관위의 공정성 훼손”에 “피를 통하는 심정”이라는 선관위 내부 반발로 인사를 철수한 것이 초유의 전말이다. 선관위는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야당의 ‘내로남불’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상식적인 문구를 선거 캠페인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판정을 내려 노골적인 여당 편향이란 비판을 받았다.

지난달 24일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신년 기자회견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온라인 비대면 기자회견의 가능성도 일축했다. 납득되지 않는 설명이다. 다 죽어가는 소상공 자영업자, 북한의 미사일 도발, 대선의 공정관리, 치솟는 신년 물가를 포함해 중대사는 산적했다. 국민과 직접 소통을 통해 국민의 걱정과 답답함을 경청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협조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포기하는 것은 책임 있는 리더십의 모습이 아니다.

조국·윤미향 … 선관위 논란까지
민주화 자부심에 상처준 역주행
상식 벗어난 ‘초유의 일’ 없어야

소통카페

소통카페

여당 대표는 지난달 26일 윤미향·이상직 의원에 대한 제명처리를 발표했다. 윤 의원의 범법행위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여당은 친일파의 준동, 토착왜구의 발호라고 했다. 그리고 국민의 생각과 입을 원천봉쇄하는 ‘위안부 왜곡 처벌법’을 추진하려고 법석을 떨었다. 또한 현재 수감 중인 이 의원이 자신의 비리를 보도하는 언론을 가짜뉴스, 편향보도라고 주장한 억지를 여당은 눈덩이처럼 부풀리며 언론의 자유를 위축하는 법 제정을 시도했다. 징벌이 주 내용인 이 법은 국내는 물론 모든 국제 언론단체들로부터 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비판받았다. 국격을  떨어뜨리는 망신이었다.

지난달 27일 대법원은 정경심 교수에 대하여 징역 4년형의 원심을 확정했다. 나라가 ‘조국 지지’와 ‘조국 반대’로 쪼개져 국력 탕진을 벌인지 2년 6개월. 그 혼돈 속에서 피의자가 자택 PC를 빼돌린 행위를 ‘증거인멸이 아니라 증거보존을 위한 것’이라는 희대의 궤변도 등장했다. 전 여당대표 아들의 군 휴가 탈법문제를 둘러싼 공방에서 여당 대변인은 안중근 의사의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위국헌신 군인본분)’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했다.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해 정부당국은 “대화 의사의 표명”이라는 어이없는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무책임한 ‘초유’는 언론에도 이르렀다. 지난 달 16일 MBC는 야당 대통령 후보자의 배우자에 대한 ‘서울의 소리’라는 유튜브의 7시간 함정취재 내용을 방송했다.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지상파의 기획탐사라면 ‘최고의 취재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진실 보도(The Best Obtainable Version of the Truth)’를 지향해야 했다. 이는 워터게이트 보도로 미국 대통령 닉슨을 하야케 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가 정의한 것으로 ‘탐사보도’의 본질을 알려준다.

어떤 정보든 쉽게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는 시대에 공영방송이 심층성과 완결성을 갖추지 않은 채 ‘편향 유튜브’를 중계한 것은 언론의 신뢰성 추락에 가속도를 높인 꼴이었다. 공영방송은 법원 앞에서 ‘목적을 위해 편향보도를 할 수 있다’고 공언하는 유튜브와는 질적으로 성격과 역할이 다른 언론이다. 언론은 권력에 대한 감시견 역할, 입장을 달리하는 당사자들에게 동등하게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공정성을 통해 품격과 권위를 지켜야 한다.

이런 ‘초유 사태’의 누적과 역주행으로 세계로부터 찬사를 받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대한민국의 자부심에 상처가 나고 있다. 우리가 바라던 게 이런 모습이었을까. 새롭게 탄생할 정권에서는 상식을 벗어나는 초유의 일들이 없어져야 한다. ‘그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며 국민을 질타하고 편을 가르는 오만은 사라져야 한다.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민주화를 이끌고, 그 공을 위대한 국민의 힘으로 돌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진정한 리더는 국민의 편을 가르지 않고 우리로 통합하게 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