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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카페 찾는 머리 희끗한 자영업자들…“대박날까요” 대신 “폐업할까요”

중앙일보

입력

“요즘 장사가 안 되는데 폐업을 해야 할까요?”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타로·사주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57)씨가 타로 운세를 봐 주기 위해 카드를 펼치고 있다. 최서인 기자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타로·사주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57)씨가 타로 운세를 봐 주기 위해 카드를 펼치고 있다. 최서인 기자

MZ세대가 자주 찾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타로·사주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57)씨가 지난달 상담받은 내용 중 일부다. 한 손님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가게 영업이 어려워지자 카페에 찾아와 토로하듯 내뱉은 말이라고 한다. 손님은 60대 자영업자였다. 최근에는 인근에서 10년 넘게 미용실을 운영했던 한 중년 미용사가 이씨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도 단골손님이 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불황을 피할 순 없었다며 영업 중단 상담을 했다.

대학가 타로·사주 카페에 주 고객층인 MZ세대 대신 60~70대 자영업자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팬데믹(대유행) 종식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운영하는 업소의 영업을 이어갈지, 그만둘지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다.

“돈 많이 벌까요” 대신 “가게 접을까요?”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명동의 한 텅빈 음식점에서 식당주인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명동의 한 텅빈 음식점에서 식당주인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이씨처럼 서울 시내 타로 카페 운영자들은 최근 카페를 찾는 손님들의 연령대와 질문 내용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예전엔 젊은 손님들이 찾아와 애정 운이나 취업 운 등을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중장년층 자영업자들이 영업 전망과 폐업 여부 등을 묻는다고 한다. 특히 나이가 지긋한 사장님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질문 내용도 이전에는 “대박 날까요”“돈을 많이 벌까요”라는 주를 이뤘다. 지금은 “가게 유지가 될까요”“폐업할까요”라는 질문이 대다수라는 게 타로·사주 카페 운영자들의 설명이다.

신촌에서 타로·사주 카페를 10년간 운영해 온 최모(59)씨는 “한동안은 애정 운을 많이 봤었는데 요즘에는 먹고사는 고민을 많이 듣는다”며 “가게를 찾는 자영업자들은 한결같이 ‘빚이나 없고, 폐업이나 되면 다행’이라고 한다. 그들의 상담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역시 신촌에서 20년간 사주 카페를 운영해 온 김완수(60)씨는 “요즘은 코로나로 죄다 힘드니 주변에 하소연할 곳이 없어 사주카페를 찾는 것 같다. 사주팔자를 떠나서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서 위안을 받는 걸 알기에 최대한 경청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에 찾아온 손님 10명 중 6~7명은 남녀 관계를 물었다. 요즘은 김씨를 찾는 손님의 40%가 자영업자다.

“좋은 말 나오면 희망이라도 가지려고” 

타로카드 이미지. pixabay

타로카드 이미지. pixabay

타로·사주 카페를 찾는 중·장년 자영업자들은 ‘좋은 말이라도 듣게 된다면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서 13년간 옷가게와 주점 등을 운영해 온 박모씨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잠을 못 잘 정도로 불안했다”며 “장사를 계속해도 되는지, 거리두기가 언제쯤 풀릴지 등 누구에게라도 앞날을 듣고 싶은 마음에 사주 카페를 찾는다”라고 하소연했다.

홍대 인근에서 타로 카페를 운영하는 이혜선(52)씨는 “인근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많이 와서 가게를 접어야 할지 말지, 상황이 풀릴지 등을 묻는다”며 “가게를 찾은 손님 중 벌써 두 분은 폐업했다”고 전했다.

과학도 해답 내놓지 못한 상황서 타로·사주에 의존

1월 26일 저녁 서울 신촌기차역 주차장에서 마련된 서대문구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있다. 연합뉴스

1월 26일 저녁 서울 신촌기차역 주차장에서 마련된 서대문구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로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불안감을 크게 느낀 중·장년층 자영업자들의 발길이 타로·사주 카페에 이어지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강정한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백신을 포함한 과학조차 팬데믹 종식 시기에 대한 확답을 점점 못 내놓고 있다”며 “그만큼 절박한 마음에 사주나 타로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면 타로나 사주에 덜 의존하게 될 거란 이야기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도 “코로나19에 대해 정부도 합리적인 해법은 내놓지 못했다”며 “개인주의 사회에서 타로·사주가 일종의 상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본다. 점집에 비해 낮은 문턱의 타로 카페에 찾아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위로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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