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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사석위호(射石爲虎)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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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호 30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사석위호(射石爲虎). 돌을 호랑이인 줄 알고 쐈더니 돌에 화살이 꽂혔다는 뜻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면 아니 될 일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임인년의 시작이 양력 1월 1일이냐, 음력 설날이냐 갑론을박도 오갔는데 원래는 24절기 중 첫째인 입춘을 기준으로 삼는 게 정설이란다. 올해 입춘은 2월 4일이니, 새해 작심삼일에 낙심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한번 사석위호의 결의를 다져도 늦지 않을 터다.

새해의 다짐에 누군들 예외가 있겠느냐마는 지금 이 경구가 가장 절실히 와 닿는 자는 바로 대선후보들이지 않을까 싶다. 여론조사마다 지지율이 출렁이면서 역대 그 어느 대선보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강자가 없는 혼전 속에 누구든 승리의 월계관을 거머쥘 수 있는 판세다. 막판 변수도 산적해 있다. 당장 지난 3일 스타트를 끊은 TV 토론에 이목이 쏠린다. 특히 미디어·SNS 선거 양상이 뚜렷한 상황에서 TV 토론에서의 실책은 승패로 직결되기 십상이다. 야구 경기에서 경기 초반의 실수는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지만 9회의 실책은 곧바로 패배를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앞으로 최소한 세 차례 더 치러야 하는 토론에서 득점보다 실점하지 않는 데 후보들이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절실하고 간절한 자가 민심 얻을 것
‘왜 이겨야 하는지’도 답할 수 있기를

단일화는 변수가 아닌 상수로 꼽힌다. 다만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전망이 엇갈린다. 여기에 정치권 일각에선 대선 이후 정계 개편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지율 1·2위 후보 모두 국회의원 경험이 전무한 데다 당내 기반도 약해 대선에서 패할 경우 존재감이 급속히 약화될 것이란 관측도 곁들여진다. 이미 여의도에는 대선 이후 여야 정당의 실권 장악을 놓고 수싸움이 치열하다는 얘기가 꽤 퍼져 있다. 그런 만큼 단일화도 이와 맞물려 논의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란 주장이다. 생각보다 복잡한 방정식인 셈이다.

변수가 많은 만큼 결과도 속단하기 어렵다. 결국엔 양쪽 진영의 지지층이 총집결하며 3%포인트 이내의 계가 바둑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호사가들은 ‘10년 주기 대선 박빙설’도 화제에 올리고 있다. 2007년과 2017년 대선에 비해 2002년과 2012년엔 투표함을 열 때까지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면서다. 개표 결과 두 번 모두 여당 후보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는데, 2022년에도 10년 주기설을 이어갈지 아니면 정권 교체에 성공하는 첫 사례를 역사에 남길지도 또 하나의 얘깃거리다.

후보들이 언제 어떻게 최종 승부수를 띄울지도 관전 포인트다. 문제는 회심의 히든카드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되레 역풍만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도 막판에 무리하게 앞지르려다 제풀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지 않았나. 끝내기에 접어든 바둑판에서는 한 수만 잘못 둬도 대마가 한순간에 사석(死石), 죽은 돌이 돼 버린다. 대선판도 마찬가지다. 잠깐의 방심으로 위호(僞虎), 가짜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하곤 했던 게 한국 정치의 오랜 역사였다.

하지만 변수는 변수일 뿐. 진짜 중요한 건 국민의 2% 허전한 마음을 누가 채워 줄 수 있느냐다. 바라기는 영화 ‘킹메이커’의 대사처럼 어떻게 이길 것이냐가 아니라 ‘왜 이겨야 하는지’ 답할 수 있는 후보가 나와 줬으면 싶다. 모든 후보가 정의를 부르짖는 상황에서 “우주의 윤리적 포물선은 길지만 그 방향은 정의 쪽으로 굽어 있다”는 마틴 루서 킹의 신념이 헛된 믿음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이는 후보가 나와 줬으면 싶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절실함과 간절함과 진정성으로 결승선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후보가 나와 줬으면 싶다. 사석위호에 진인사대천명. 대선도 5일로 32일 남았다. 이제 드디어 포물선의 끝이 보일 시간이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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