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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봉이 김선달’식 주택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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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최근 시공사를 선정하며 재건축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1970년 완공)은 대한민국 주거사에서 ‘최초’의 기록을 여럿 가지고 있다. 우선 국내 최초로 선분양한 단지다. 아파트를 짓기도 전에 팔았지만, 실제 집을 둘러보는 기분을 낼 수 있게 가짜 집을 만들었다. 국내 첫 견본주택이다. 이 가짜 집은 아파트가 들어설 한강의 백사장 위에, 마치 신기루처럼 세워졌다. 이후 견본주택은 사람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자극하며 더욱더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선분양 제도가 반세기 넘게 유지되는 것도 한강맨션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시 정부는 한강맨션의 건립을 놓고 “봉이 김선달 같다”고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사장을 메워 만든 택지에 당시 대한주택공사(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건설비 한 푼 들이지 않고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를 지었다. 선분양 제도를 통해서다. 이를 통해 정부는 재정투입 없이 주택 공급 및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할 수 있게 됐고, 건설사 역시 자금 부담 없이 사업할 수 있게 됐다. 결국 모든 부담은 소비자의 몫이 됐지만, 분양권을 팔아 차익을 얻을 수 있으니 되레 인기였다. 그렇게 복부인이 탄생했다. 한강맨션의 경우 완공 이후 ‘복덕방에 자가용 차를 타고 온 부인들이 매입을 원해 새로운 치맛바람을 일으킨다’며 기사화되기도 했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아파트 부실시공 문제와 더불어 후분양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정부의 주택 공급 패러다임을 양에서 질로 바꾸자는 요구였다. 후분양은 아파트를 80%가량 지은 뒤 분양하는 제도다. 공정을 따져보면 골조공사를 마치고 내부 마감을 한 뒤라 실제 살 집을  어느 정도 둘러본 뒤 살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7년 국정감사에서 “공공부문부터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민간에도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공급난에 집값이 치솟자 ‘후분양제’는 없던 일이 됐다. 그러던 것이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를 계기로 또 거론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후분양 아파트를 사전청약하는 일도 벌어진다. 국토부가 지난달 사전청약한 평택 고덕국제화 지구의 한 단지(658가구)는 현재 공사 중인데, 입주예정일이 내년 10월이다. 대방건설에서 짓고 있는 이 아파트는 원래 국토부의 후분양 활성화 방안에 따라 금융 인센티브를 받고 후분양을 추진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의 사전청약 정책에 동참하는 민간단지가 됐다. 한 주택업계 관계자는 “후분양 단지를 사전청약해 선분양하게 됐으니 코미디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사고가 터지면 사후약방문식으로 후분양제가 거론될 뿐이다. 봉이 김선달식 주택 공급 정책을 깨려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