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집회' 허가 놓고 마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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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에서 정치이념성 집회.시위를 금지하려던 서울시의 방침이 물거품이 될 처지다. 경찰이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릴 민주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를 허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초 민주노총은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려 했지만 경찰이 교통혼잡을 이유로 불허하자 장소를 서울광장으로 바꿔 재차 신고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10일 "민주노총이 거리행진 구간을 일부 축소하는 등 도심 집회에 대한 비판 여론을 나름대로 신경 썼다고 보고 이번엔 허가를 내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광장에 대한 관리권이 있는 서울시는 "경찰의 결정은 서울광장을 시민들의 휴식.문화공간으로 보호하려는 시의 취지를 무시한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 과연 교통혼잡 없을까=민주노총은 12일 서울역 광장.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청계광장 등 도심 9곳에서 사전집회를 연 뒤 오후 3시 서울광장에 3만 명(경찰 예상)이 모여 본집회를 시작한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사전집회 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인도를 따라 행진해 서울광장에 집결한다. 그러나 공공연대 4000여 명은 서울역 광장 사전집회가 끝난 뒤 2개 차로를 따라 퇴계로~회현로터리~소공로~서울광장으로 거리행진을 할 예정이다. 거리행진 구간은 백화점 등이 밀집한 지역이라 주말에도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경찰은 "민주노총이 처음보다 집회 규모를 줄였기 때문에 큰 교통혼잡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 측은 "광화문 앞이 교통체증 때문에 안 된다면 서울광장도 마찬가지"라며 "서울 한복판에서 3만 명이 모였다 흩어지는데 어떻게 교통체증이 없겠느냐"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 휴식 공간 보존 vs 집회시위 자유=서울시는 이미 8일 민주노총에 집회 불허방침을 정식으로 통보했다. 원래 12일 오후 2~4시엔 서울문화재단의 '일상의 여유'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어서 서울시는 민주노총의 집회 강행에 대비해 남대문경찰서에 보호 요청까지 해뒀다.

시 관계자는 "집회 신청 전에 이미 다른 문화행사가 예정돼 있는데도 민주노총이 집회를 억지로 열겠다는 것은 자기들 권리만 소중하고 남의 권리는 무시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서울광장을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보존하기 위해 경찰이 서울광장을 시위금지 구역으로 포함시켜주도록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현행법상 민주노총의 서울광장 집회를 금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서울광장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금지구역에 해당하는 주요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금지통보를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광화문에 이어 서울광장마저 집회를 금지할 경우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수 있는 장소가 한 곳도 없어지게 돼 기본권 침해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종묘~광화문 거리행진을 신청했다가 민주노총과 함께 불허 결정을 받았던 한노총도 "그렇다면 우리도 서울광장에서 열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서울시로선 집회 강행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일단 민주노총이 무단으로 공유지를 사용한 데 대해 사후 변상금을 물릴 계획이다. 불법 집회로 변상금을 문 경우는 올해만 10여 차례다.

하지만 변상금이 60만원 정도에 불과해 실효성을 높이려면 조례 개정을 통해 금액을 대폭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시 관계자는 "아직 변상금을 올릴 계획은 없다"며 "최대한 민주노총이 집회를 딴 곳에서 하도록 협조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철재.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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