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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포맷 후 퇴사…사명 한글자만 바꿔 회사 세운 前본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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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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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경기도의 한 중견기업 임원이던 A씨가 돌연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 지분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본부장직을 버리고 떠났다. A씨가 그만둔 회사는 그 분야 업계 1위로서 독자 기술 개발에 성공해 동남아로도 진출하면서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손꼽히던 곳이었다.

A씨는 퇴사 후 같은 업계에서 비슷한 회사를 차렸다. 그가 새로 차린 회사의 이름은 다니던 기업에서 불과 알파벳 한 글자를 보탠 정도로 비슷했다. 심지어 같은 회사에서 주요 직책을 맡던 핵심 인력 8명이 우르르 회사를 그만뒀다. 이들은 모조리 김씨가 차린 회사로 옮겨왔다. 이들이 새로 회사를 차린 뒤 해당 기업의 월 매출은 반토막이 날 정도로 손해가 막심했다.

결국 해당 중견기업은 이들 9명을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고소했다. 해당 회사는 이들이 거의 비슷한 회사명을 만들어 핵심 기술과 영업비밀을 빼돌려 매출을 늘리고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A씨에게 징역 10월을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다른 8명도 모조리 유죄가 선고됐다. 무겁게는 징역형의 집행유예형(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가볍게는 벌금 200만원이 매겨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은 심지어 회사의 백업지침도 지키지 않고 몽땅 자료를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매달 회사의 공용폴더로 자료를 백업해놔야 되는데 회사를 그만두기 세 달 전부터는 이를 지키지 않고 컴퓨터를 포맷해버린 것이다. 이들의 노트북 안에는 회사의 개발 업무, 거래처 및 자재 구매 등에 관한 자료들이 있었다.

재판부는 “퇴사 직전에 회사의 공용폴더로 백업을 하지 않은 자료를 인수인계 없이 삭제한 행위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했다. 또 “피해 회사와 유사한 영업표지를 사용한 행위는 일반 소비자로 하여금 피해 회사의 영업표지와 혼동하게 하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대표이사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임직원들 일부를 해고하려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해당 회사에 근무하게 된 경위는 참작할만한 사정이 없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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