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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살인누명도 벗겼다…교민 지키는 '바다 출신' 3총사

중앙일보

입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세계 각국이 문을 걸어 잠그면서 교민들의 타향살이는 더 힘들어졌다. 하늘길은 막힌 데다가 이국에서의 활동은 제한됐다. 누군가의 도움이 더 절실해지자 ‘경찰영사’의 존재가 해외 현지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고 한다.

경찰영사는 현직 경찰관으로 해외에 파견돼 대사관과 영사관에서 3년간 교민 곁을 지키는 ‘수호 천사’다. 육상 경찰이 대부분이지만 바다를 지키던 해양경찰 출신도 있다. 코로나 시대에 육지와 바다를 가리지 않고 교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해경 출신 경찰영사 ‘삼총사’를 보이스톡과 메신저 대화로 만나봤다.

‘중남미 전문가’ 꿈꾸는 파라과이 영사

2019년 황윤하 경감은 에콰도르 해군 초계기를 타고 해경의 해양협력사업을 위해 에콰도르를 방문했다. 사진 본인 제공

2019년 황윤하 경감은 에콰도르 해군 초계기를 타고 해경의 해양협력사업을 위해 에콰도르를 방문했다. 사진 본인 제공

황윤하(40) 경감은 2017년 남대서양에서 ‘스텔라 데이지호’가 침몰했을 때 상황이 아직도 생각난다고 했다. 한국인 8명, 필리핀인 16명이 타고 있던 화물선이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사고다. 당시 해경엔 스페인어 가능 인력이 없어서 우루과이 해경과 협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칠레 유학 중이던 황 경감은 이때 일을 계기로 스페인어 공부에 매진했고 2019년 파라과이 대사관 경찰영사가 됐다. 2017년의 아쉬움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그의 마음가짐은 코로나19 여파로 파라과이 아순시온 공항이 문을 닫았을 때 그대로 묻어났다. 한국 국제협력단이 긴급철수하기로 하자 그는 타국 특별기 운항계획 등을 신속히 파악해 단원·교민 등 200여명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황 경감은 타국 경찰과의 돈독한 관계를 강조했다. 과거 온두라스에서 한국인이 살인누명을 썼을 때, 한국 경찰영사가 친한 온두라스 경찰관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우를 예로 들었다. 공통으로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 국가에선 인맥이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한국 상선과 원양어선 상당수가 파나마를 선적국으로 두고 있는 현실도 지적했다. 세금혜택과 인건비 절감을 위해 선박을 제3국에 등록하는 편의치적의 경우 사고가 나면 한국 해경이 주도적으로 수습하기 어렵다고 한다. 황 경감은 “파라과이는 해군과 해경이 약해 내륙 수운이 마약 유통 경로가 되고 있다”며 “교민을 위해서라도 파라과이 해경이 역량을 키울 수 있게 돕고 싶다”고 했다.

합동훈련 인연이 경찰영사로

지난해 11월 홍현도 경감(왼쪽에서 세번째)은 한국인 가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망가온 경찰서장을 만나 면담했다. 사진 본인 제공

지난해 11월 홍현도 경감(왼쪽에서 세번째)은 한국인 가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망가온 경찰서장을 만나 면담했다. 사진 본인 제공

홍현도(48) 경감은 인도 뭄바이 총영사관에서 교민 900여명을 위해 뛴다. 그는 2006년 여름 한국·인도 해경 합동훈련으로 인도와 연을 맺었다. 인도양에 출몰하는 해적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기획부터 지휘까지 도맡았던 그는 인상 깊었던 인도에 꼭 돌아오겠다고 다짐했고 지난해 뭄바이 총영사관 경찰 영사가 되면서 꿈을 이뤘다.

인도엔 한국 해운·물류회사 100여개가 있다. 홍 경감은 선박과 선원의 안전을 위해 인도해군·해경과의 소통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인도의 공권력이 권위적이어서 교민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과 씨름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최근엔 오미크론으로 일이 늘었다. 서울과 규모가 비슷한 뭄바이는 한 차례 ‘락다운’을 겪었다. 이번 달 하루 확진자 수가 1300명대로 떨어졌지만, 영업시간 제한은 그대로다. 한국 식재료를 구하는 게 어려워졌다. 홍 경감은 “인도 관습과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교민들을 위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 전문가’가 책임지는 안전

박민철 경정(왼쪽에서 두번째)은 지난해 가을부터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에서 경찰영사로 일하고 있다. 사진 본인 제공

박민철 경정(왼쪽에서 두번째)은 지난해 가을부터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에서 경찰영사로 일하고 있다. 사진 본인 제공

박민철(53) 경정은  ‘러시아 전문가’다. 러시아어 특채로 해경이 된 그는 한국해경과 러시아 국경수비대 간에 교류협력을 주도했다. 지난해부턴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서 교민과 만나고 있다.

그는 보안과 선박안전이 특히 중요하다고 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중국·북한과 가깝고 입출항하는 한국 화물선과 조업하는 한국어선이 인근에 많아서다.

최근 러시아는 국제정세 영향으로 물가가 오르고 코로나19 확산세가 심해지면서 분위기가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박 경정은 “조선, 건설 분야에서 한국인 기술자가 러시아로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긴급 상황이 생기면 교민 안전을 챙기고 주재국에 공정한 수사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과거보다 더 외롭게 타국에서 명절을 쇠는 교민들이 더 행복하길 바란다는 게 경찰영사들의 공통된 바람이었다. “일이 벅찰 때마다 타향살이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교민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곤 해요. 저희는 한 발짝 뒤에서 안전하게 지켜드리겠습니다.” 해경 출신 경찰영사 3총사의 새해 인사이자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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