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그었냐? 자살할라고? 너 유서에 내 이름 썼다며? 나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학교폭력은 어떻게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었을까. 지난 28일 공개돼 단숨에 글로벌 순위 1위(플릭스패트롤 집계)에 오른 '지금 우리 학교는’은 비가 내리는 한 건물 옥상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등학교에서 시작한 바이러스가 온 도시로 퍼진 재난 상황에서, 피해자 아버지인 과학 선생님 이병찬(김병철)은 절규한다.
"작은 폭력이라고 그냥 넘기면 그 폭력에 지배당하는 세상이 온다고 수백 번 경고했어. 아무도 내 말 안들었어. 그럴 수도 있지, 애들이 싸울 수도 있지, 왕따 당할 만하니까 당하지, 그렇게 외면한 인간들이 지금 이 세상을 만든 거라고!“
좀비가 된 친구를 놔야 한다…고2가 겪기엔 무거운 절망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가 번지는 효산시, 그 중 진원지인 효산 고등학교에서 살아남으려는 학생들의 분투를 그렸다. 가장 친한 친구의 손을 잡고 뛰어 도망쳤지만, 좀비가 된 친구의 손을 놓아야 하는 비정함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겪는다. 희망을 믿고 기다릴지, 절망을 인정하고 다른 길을 찾을지 고민도 18세에겐 무겁다.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남으려 애쓰지만 “사람은 절망에 빠진걸 확인하는 순간 진짜 절망에 빠진대”라는 반장 최남라(조이현)의 말처럼, 폐허가 된 학교와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된 걸 확인할수록 아이들은 절망에 빠진다.
도입부터 ‘학폭’을 그린 만큼 이후에도 ‘폭력’에 대한 언급은 이어진다. "여긴 지옥이야. 난 그냥 지옥에서 벗어나는 거야“ "넌 할 수 없이 살인한거나 마찬가지야"라고 말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았고, 안전한 곳에 있던 학폭 피해자가 알몸을 찍은 영상이 유포되는 걸 막기 위해 핸드폰을 찾으러 좀비가 득시글대는 학교로 들어가는 모습에서는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의 절박함이 읽힌다. 화장실에서 혼자 출산하는 학생, "학교 일은 학교 안에서 처리해"라고 말하는 교장 선생님 등 학교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현실도 고스란히 담았다.
등교 달리기, 과학실·음악실… '고등학교' 색 살린 좀비물
'학교물'이지만 '좀비물'이다. “좀비 훈련만 3개월 했다, 어떤 K-좀비보다 더 디테일하게 표현했다”고 밝혔던 이재규 감독의 말처럼, 수백명 좀비 배우들은 기예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화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고등학교’라는 배경도 좀비물에 다채로움을 더했다. 극 초반에 학교에 늦지 않기 위해 달려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후반부로 갈수록 죽이기 위해 떼를 지어 달리는 좀비떼의 모습으로 변한다. 학생들이 좀비와 맞서 싸우는 데에도 과학실, 방송실, 음악실, 보건실 등 학교의 특수성을 살린 장소가 쏠쏠히 활용된다.
코로나19, 세월호 얼핏 담은 메시지
‘학폭’으로 시작한 메시지는 사회로 확장된다. 이재규 감독은 지난 26일 제작발표회에서 “학폭은 학교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해 집단이 있고 피해자가 있고 사회도 집단 이기주의로 인해 반목하고, 대립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지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한 작전의 딜레마는 “야, 다수가 살기 위해 대체 어디까지 잔인해도 되는거냐?”라고 묻는 형사의 물음으로 집약된다.
‘2022년, 한국’이라 더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강한 증상-약한 증상-무증상 감염으로 변하는 좀비 바이러스, 바이러스가 창궐한 효산시를 굳이 찾아간 유튜버, ‘효산시민 수용 결사반대’를 외치는 인접 도시의 모습에서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 상황이 비친다. "학생들 대피방송이라도 해야될 거 아닙니까"라고 외치는 선생님, 추모 리본과 메시지, “절차 때문에 사람 못 구한 적이 많아요”라는 소방관의 말, 마지막 순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상편지를 남기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사고가 겹쳐지고, 도시에 들어선 군인과 폭격은 80년대 군부 정권의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나가서 밥도 먹고, 목욕탕도 갔다오자"
바이러스 발견자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괴물이 된다. 죽은 사람은 잊을 수 있지만 변한 사람은 잊기 힘들다”라고 기록했다. "아무 힘이 못 돼서 미안해, 다치지 말고 꼭 살아남아서 보자. 어?"라고 말했던 선생님과, “사고 앞에선 다 평등하더라. 성적이 중요한게 아냐. 안전하고 건강한게 최고야”라고 말하던 소방관 아빠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서로에게 기댄다. 절망하는 친구에게 “여기서 나가서 밥도 먹고, 목욕탕도 갔다오고, 그러고 나서 얘기하자”라며 미래를 이야기하고, “난 너 믿어"라며 불안을 달래준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개 직후인 29일 글로벌 차트 1위(플릭스패트롤)에 올랐다. 평가도 긍정적이다. 30일 오전 현재 미국 평점 사이트 IMDb에서 7.7점,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평론가 지수 100%, 이용자 지수 80%를 기록했다.
"한국사회 보고서 담은 새로운 좀비", "다소 길고 드라마가 많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학교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대한 보고서"라며 "다이나믹한 좀비 표현과 한국만의 상황을 담은 색다른 좀비물로 기존 좀비 팬들도 만족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좀비 외에도 감상할 포인트가 많은 작품"이라고 평했다. 김헌식 평론가도 "글로벌 시장에서 좀비물과 학원물을 좋아하는 젊은층에 소구할 작품성, 오락성을 갖췄다"고 호평했지만 "좀비물 매니아들은 다소 실망할만한 디테일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1시간짜리 12회, 다소 긴 분량에 대해서는 "액션 하나하나를 점 찍듯 디테일하게 만든 감독의 야심(정덕현)", "다소 길고, 좀비물 외에 드라마가 너무 많다(김헌식)"등 평이 갈렸다. 일부 학교 폭력 묘사의 '선정적' 논란에 대해서는 "학교 폭력은 현실에서 더 강하고, 오히려 멀찍이 담으며 현실보다는 선정성을 줄였다(정덕현)", "모바일에 익숙한 Z세대는 오히려 공감할 현실의 폭력(김헌식)"이라고 봤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영어 제목은 'All of us are dead(우리는 모두 죽었다)'지만, 열린 결말로 끝난다. 이재규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이 작품은 뒤로 갈수록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묘미가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마지막 장면 이후는 후속 시리즈의 가능성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