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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 '깐부' 맺는 건설사들, 왜

중앙일보

입력

서울시가 관악구 신림1구역에 신속통합기획을 적용해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관악구 신림1 재정비촉진구역 일대 모습. 연합뉴스

서울시가 관악구 신림1구역에 신속통합기획을 적용해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관악구 신림1 재정비촉진구역 일대 모습. 연합뉴스

최근 노후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에서 두 개 이상 건설사가 연합해 공동으로 시공을 맡는 '컨소시엄'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1기 신도시 등 노후 아파트가 늘면서 리모델링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리모델링 시공 경험과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2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 중인 리모델링 시장에 눈을 돌린 대형 건설사들이 컨소시엄을 통해 사업 수주에 나서고 있다. 총사업비 1조원이 넘는 서울 강동구 선사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사업 입찰에는 현대건설과 롯데건설이 컨소시엄을 이뤄 입찰했다.

2000년 6월 준공한 이 아파트는 2938가구, 16개 동 규모의 대단지다. 앞선 두 차례 선정 총회에서 유찰됐지만, 수의계약을 통해 올 상반기 안에 현대건설-롯데건설 컨소시엄이 시공사로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앞서 공사비 8000억원 규모의 송파구 가락동 '가락 쌍용1차아파트'의 시공사도 쌍용건설 컨소시엄으로 선정됐다. 이 컨소시엄은 주관사 쌍용건설(26%)과 포스코건설(26%)·현대엔지니어링(25%)·대우건설(23%) 등으로 구성됐다. 쌍용건설은 당산 쌍용예가, 도곡 쌍용예가, 방배 쌍용예가, 밤섬 쌍용예가 등 4개 단지 리모델링 준공 경험이 있다.

쌍용건설은 지난 2000년 업계 최초로 리모델링 전담팀을 출범한 이래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리모델링 준공 실적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쌍용건설

쌍용건설은 지난 2000년 업계 최초로 리모델링 전담팀을 출범한 이래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리모델링 준공 실적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쌍용건설

최근 리모델링 시장에서는 지나친 수주 경쟁을 지양하는 모습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업체 간 수주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데,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라며 "건설사 간 출혈 경쟁을 피하고 전략적 제휴를 맺는 것이 조합에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도시정비사업에서 5조5499억원 규모의 수주에 성공했다. 이 가운데 1조9258억원이 리모델링 사업이다. 하지만 아직 리모델링 준공 실적은 없다. 이에 시공 경험이 있는 건설사 등과 적극적으로 컨소시엄을 이뤄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국내 아파트 리모델링 준공 실적을 갖춘 건설사는 삼성물산·쌍용건설·포스코건설·DL이앤씨·롯데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 정도다.

재건축·재개발 시장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건설사들은 대단지 시공에서 수주 경쟁 과열로 인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컨소시엄 형태를 여전히 선호한다. 컨소시엄을 이룰 경우 사업 진행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규모가 크지 않은 단지의 경우 당연히 단독 수주가 더 유리하지만 1000가구가 넘는 대형 단지의 경우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게 사업 안정성이 높아진다"며 "단독 입찰을 고려했는데, 수주전이 과열될 경우 수익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입찰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에선 '컨소시엄 금지'

하지만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여러 건설사가 수주 경쟁에 참여하길 원한다. 컨소시엄이 시공사로 선정되면 고급 아파트 브랜드 유치가 힘들고, 하자 등 발생 시 대응이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강남, 서초, 용산 등 주요 재건축·재개발 조합에서는 최근 시공사 입찰 규정에 '컨소시엄 구성 금지'를 아예 명문화하는 곳이 늘고 있다.

2020년 시공사를 선정한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의 경우 5816가구 규모의 초대형 단지로 당초 건설사들의 컨소시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반발로 현대건설, DL이앤씨, GS건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현대건설이 단독수주했다.

각종 규제가 심한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가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코오롱아파트에서 리모델링 조합 설립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내건 모습. 뉴스1

각종 규제가 심한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가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코오롱아파트에서 리모델링 조합 설립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내건 모습. 뉴스1

건설사들은 준공 후 발생하는 하자를 처리할 통합 AS센터를 운영하고, 조합원들이 단지명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컨소시엄 전략을 짜고 있다.

총사업비 1조1500억원에 이르는 서울 관악구 신림1구역 재개발에서는 1군 건설사 3사가 컨소시엄(GS건설·현대엔지니어링·DL이앤씨)을 꾸려 등장했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들이 컨소시엄 방식으로 재개발이 추진될 경우, 품질 저하나 하자보수 책임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내홍을 겪었다.

'단일 브랜드 적용·단일 시공' 등 파격적인 제안을 해 결국 사업권을 따낸 일도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리모델링의 경우 조합원들도 공사의 난이도가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공 경험이 있는 건설사의 컨소시엄 구성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다"며 "하지만 서울 등 수도권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집값이 오르고, 분양 경기가 좋은 상황에서 컨소시엄을 선택할 유인이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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