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수대

영빈관

중앙일보

입력 2022.01.28 00:18

업데이트 2022.01.28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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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위문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청와대 영빈관은 본관, 비서동과 함께 청와대를 구성하는 주요 건물 중 하나다. 대규모 회의나 외국 정상을 위한 공식 행사가 개최되는 곳이다. 청와대의 격(格)이 드러나는 셈이다.

지금 영빈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인 1978년에 만들어졌다. 외관은 조선시대 왕이 연회를 열었던 경복궁 경회루와 닮았다. 내부는 프랑스 루이 14세 때 발달한 건축양식을 따랐다. 청와대 상징인 봉황과 무궁화도 새겨져 있다.

이 영빈관에는 ‘반쪽짜리’ 논란이 따라붙는다. 외국의 영빈관과 달리 귀빈이 묵을 수 있는 숙소가 없어서다. 미국은 워싱턴 백악관 건너편에 위치한 블레어하우스(Blair House)를 매입해 국빈용 숙소로 활용하고 있다. 링컨 대통령 초상화가 걸린 링컨 룸을 비롯해 100여 개 방이 있다.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 정상이 이곳에서 묵는지, 묵는다면 몇 박을 하는지를 놓고 백악관의 환대 수위가 평가되기도 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가 “(당선되면) 영빈관을 옮기겠다”는 취지로 말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영빈관 건물을 통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예술 수준을 느낄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터를 문제 삼은 것인지 모르겠다. 영빈관은 고종 30년(1893년)에 농사를 장려하기 위해 건립한 경농재(慶農齋)가 있던 곳이다.

영빈관에 대한 불만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터져 나왔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2019년 2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떤 상징도 역사도 스토리텔링도 없는 공간에서 국빈 만찬과 환영 공연 등 여러 국가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늘 착잡했다”고 말했다. 영빈관을 국가 행사가 치러지는 쇼 무대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아 아쉬웠지만, 국격 측면에서 개·보수 필요성에는 공감이 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미크론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올해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영빈관은 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과 2018년, 2019년, 2020년 세 차례 신년 기자회견이 열렸던 곳이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고 말했다. 공간만 강조해서는 격이 완성되지 않는다. 때로는 공간을 채우는 내용이 진정성의 격을 높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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