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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경의 법률리뷰

자식으로 입양한 손자, 최고의 선택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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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최근 부모·자식의 정의를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미성년자에게 친부모가 있는데도 그들이 자녀를 양육하지 않아 조부모가 손자의 입양을 청구하는 경우, 입양이 요건을 갖추고 아동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허가해야 한다는 취지다. 전통적인 가족공동체 질서에 중대한 혼란을 초래한다는 게 1, 2심 태도였는데, 대법원이 이보단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친모는 고교 시절 임신해 혼인신고 후 아동을 출산했고, 생후 7개월 무렵 아동을 부모 집에 두고 갔다. 그때부터 아동이 조부모를 친부모로 알고 성장한 케이스다. 1, 2심이 조부모 입양을 허락지 않은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친모가 생존하고 있어 친족관계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는 점, 입양이 아니더라도 후견을 통해 양육의 법률상·사실상 어려움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점, 비밀을 만들어 신분관계를 숨기기보다 정확히 알리는 게 아동에게도 낫다는 점, 친부모가 아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하는 건 아동의 복리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조손 가족 차별 불식이 더 시급
모자가 부모이자 형제 관계로
‘친모 =양육 부적격자’ 우려도

그런데 대법관 다수는 시각이 달랐다. 당장 민법은 ‘존속’을 제외하곤 혈족입양을 금지하지 않는다는 점부터 든다. 여기에 입양의 목적은 아동의 복리라는 걸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설령 가족 내부 질서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더라도 입양이 아동에게 더 이익이면 가족 구성에 관한 당사자의 판단과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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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대법관 3명은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조부모가 미성년 손자를 입양하는 건 친자관계의 기본적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첫째 논거다. 입양 전 친족관계가 그대로 존속하기 때문에 아동과 생모는 법적으로 형제 겸 부모의 이중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조부모의 가족관계증명서엔 친모·아동 둘 다 자녀로 나와 형제 관계처럼 보이고, 친부모의 가족관계증명서엔 조부모, 아동의 양친자 관계가 드러나지 않아 친자관계로 보인다. 둘째 논거는 조부모가 친부모처럼 양육하는 비밀 입양은 향후 자녀의 정체성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더 크다는 점이다. 누나로 알고 지낸 생모가 자기 자녀를 양육하게 되면 아동의 원망과 배신감이 상당히 클 것이고, 결국은 아동의 복리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거다. 여기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신의 부모에게 자녀를 맡긴 친부모를 ‘양육의무를 저버린 부적격자’로 낙인찍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등 국제 규범과 ‘입양특례법’ 등 국내 법령은 ‘원가정 양육의 원칙’을 천명하고, 이를 위한 후견이나 사회보장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원가정 양육을 지지·원조해야 할 조부모가 사회·경제적 지위가 열악한 친부모의 양육능력을 이유로 부모의 지위를 대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소수의견 시각이다. 법원이 후견을 권장하고 입양을 불허해 온 것도 조부모가 미성년후견 제도를 이용해 친권자와 똑같이 보호교양권, 거소지정권, 재산관리권, 법정대리권 등을 행사할 수 있고, 친부모도 양육능력이 갖춰지면 실권 회복을 통해 친권을 되찾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섣불리 입양부터 해버리면 양육능력을 회복하더라도 부모의 지위를 회복할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입양의 소멸은 재판상 파양만 가능한데, 파양 사유는 한쪽의 귀책사유나 중대한 사정변경을 요구하고 있어 단순히 친부모의 양육능력 회복을 파양 사유로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현대 사회는 혼인과 출생률 감소, 이혼과 재혼의 증가 등 가족의 정형성이 감소하고, 가족에 대한 관념과 가치관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판결의 배경을 설명한다. 그러나, 조손관계라도 친자관계 못지않게 당당하게 살 수 있게 하고, 차별의 시선을 없애는 노력이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하는 게 아닐까. 자연스럽지도 않은 이중의 친족관계를 만들어 조손관계를 친자관계로 감춰 주는 게 더 나은 선택인지 의문이다.

요새 우리나라도 사법 적극주의의 움직임이 커졌다. 사법부가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관계까지 과감히 손대니 말이다. 그러나, 조부모를 부모로 바꿔주는 게 과연 아동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건지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