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용 탁상행정 언제까지/김석현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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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퇴폐이발소 이용객명단을 공개한다는 17일 서울시의 발표가 5시간만에 철회됐다. 『계획에도 없었고 있을 수도 없는 대목이 발표자료에 잘못 끼어들어 갔다』는게 담당간부의 어이없는 해명이었다.
말단 실무자가 밤새 허겁지겁 만든 자료를 미처 검토해볼 시간조차 없었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추상같은 「대범죄 선전포고」가 있은뒤 비상이 걸린 관가의 한 단면이다.
13일 이후 닷새동안 각 부처ㆍ기관마다 후속조치들을 급조해 내느라 모두 마치 호떡집에 불난격이다.
『각하 특별담화의 구체적 실천을 위해 가능한 모든 행정력을 집중 투입해… 』
대민행정 1번지 기관이라는 서울시가 세운 실천계획의 첫마디다. 공무원들이 어떤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고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승전 가능성은 뒷전이다. 우선 그럴듯하게 내보일 작전계획서를 꾸며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연말까지 범죄ㆍ폭력을 일소하고,불법ㆍ무질서를 추방하며,과소비ㆍ퇴폐풍조를 뿌리뽑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결코 의심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어떤 대목에서는 국민의 박수를 받을만한 일도 하고 있다.
그러나 무슨일이 있을때마다 「일제소탕」이니 「척결」이니 「근절」이니 「완전달성」이니 하는 식으로 탁상에서만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추진하다가 용두사미격이 돼버리는 종전의 폐단을 반복하는게 아닌가 우려된다.
1년 가까이 「엄벌」을 내세워 단속해온 유흥업소의 심야영업이 아직도 그대로 계속되는 마당에 한술더떠 「매일밤 합동단속」이란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세운 것이라든가,학교주변 유해업소 금지구역반경을 두배로 늘리려다 문교당국과 사전협의가 안돼 슬그머니 후퇴한 것 등은 모두 전시용 「탁상행정」의 전형이었다.
예산ㆍ인력ㆍ여건도 갖추지 못한채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목표를 설정한다 해도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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