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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대선땐 발달장애인 다시 투표할 수 있을까…'차별구제 청구소송' 낸 사연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기표소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기표소 모습. 연합뉴스

선관위, 2020년 ‘투표 보조지침’ 삭제 

서울 마포구에 사는 유모(60)씨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발달장애 아들(31)과 투표소를 찾았다가 말문이 턱 막혔다. 투표소 담당직원이 “신체나 시각장애 이외 장애인은 혼자 투표해야 한다”며 유씨의 ‘투표 보조’를 가로막아서다. 유씨는 “아들은 인지능력이 떨어져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기표소 안에 함께 들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씨 아들은 지난 선거 땐 투표 보조를 했다고 한다. 기표소 안에서 아들에게 투표용지에 있는 후보들을 짚으며 공부한 공약·정책내용을 반복해 이야기해주면 아들이 지지 후보를 선택해냈다.

유씨 아들이 보조를 받아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은 한해 전인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변경된 선거사무지침 탓이다. 당시 선거사무지침에서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 보조 지침’이 삭제됐으나 유씨는 이를 알지 못한 채 투표장에 갔다. 유씨는 마포구 선거관리위원회 측에 “전처럼 투표 보조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아들 혼자 들여보냈다.

유씨는 “발달장애도 나타나는 증상이 저마다 달라 그에 맞는 투표 보조가 꼭 필요하다”며 “전국 발달장애인이 25만 명인데 앞으로 그들의 표를 다 무효표로 만들 셈이냐”고 했다.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에 대한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차별 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인 단체 회원들. 연합뉴스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에 대한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차별 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인 단체 회원들. 연합뉴스

“의사결정권 침해 우려” 보조지침 삭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6년부터 ‘지적장애·자폐 등 발달장애인은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선거사무지침을 운영해왔다. 그러다 “동반한 부모나 투표 보조인이 선거인 당사자의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4년 뒤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중에서도 이같은 조처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가 오히려 이들의 의사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다. 중증 발달장애 아들을 둔 김모(70·여)씨는 “솔직히 발달장애인이 정치적 배경이나 후보의 공약 등을 제대로 알긴 어렵다”며 “부모가 찍으라는 대로 찍는 건 당사자의 의견과는 무관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7월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 허용’이 골자인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법안 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장애인 단체, 차별구제 청구소송 제기 

하지만 투표 보조를 다시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 단체는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에 국가를 상대로 ‘발달장애인 공직선거에 대한 정보 접근권 보장을 위한 차별 구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장애인연대 측 관계자는 “일부 장애인들은 인적사항 확인 등 투표를 하면서 거치게 되는 여러 절차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아 공적 조력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들의 참정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의 발달장애인 등을 위한 그림투표 용지. 후보자의 사진이 함께 나와있다. [사진 소소한소통]

대만의 발달장애인 등을 위한 그림투표 용지. 후보자의 사진이 함께 나와있다. [사진 소소한소통]

"발달장애인 위한 선거정보 제공해야" 

전문가들은 투표 보조 여부를 떠나 정부가 더 많은 발달장애인의 투표권 보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용득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적 약자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가장 먼저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정보가 제공된 선택’(informed choice)”이라며 “TV토론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이 제공되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에게도 이들이 알 수 있는 형태의 선거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소소한 소통’의 백정연 대표는 “해외 선진국처럼 투표 용지에 정당의 로고 및 후보자의 사진을 담은 ‘그림투표 용지’를 도입한다면 발달장애인의 접근성을 훨씬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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