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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학생인권, 이해와 존중 넘어 실천이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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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 등 5대 도시에서 고교평준화가 막 시작된 즈음인 1976년에 필자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3 당시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담임교사로부터 학급 전체가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았던 기억이 있다. 책임감을 고취하기 위한 교육적 차원의 체벌이었다지만, 그것은 학생의 자존감에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 당시 전국에서 유학생들이 지원하기도 했던 지방의 대표적인 명문 고교에서 ‘옥에 티’라고 할 경미한 사건으로 필자에겐 평생의 트라우마가 됐다.

1991년 대한민국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가입·비준했다. 이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1996년, 2003년, 2011년 한국 정부에 아동 인권 보호 강화를 위한 법률과 제도 개선을 지속해서 권고했다. 정부는 1997년 12월 제정된 ‘교육기본법’에 학생의 인권 존중 의무를 명시했다. 2007년 12월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에 학생의 인권 보장 의무를 다시 명시했다.

자존감 상처, 평생 트라우마 남아
‘학교에 적 둔 아동’ 인권 존중해야

그 후 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아동·청소년 인권기본법 등의 제정 권고’를 하면서 입법으로 구체화할 것을 수차례 촉구했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경기도 학생 인권 조례’를 제정했고, 이후 전국 17개 시·도가 순차적으로 지자체에서 학교 내 아동의 인권 보호를 위한 조례 제정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아직도 구태의연한 방식의 전체주의적·획일적인 방식의 교육이 병행되면서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성인인 교사들의 교권 침해를 논하기 전에 보호받아야 할 아동의 권리가 우선이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다.

교사와 성인에 의한 학교폭력과 아동학대는 성숙한 민주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 아동의 가슴에 평생의 트라우마를 남기는 비(非)교육적, 반(反)교육적 행위라 할 것이다. 이제는 모든 교사가 더 확실하게 학교의 변화와 책임을 통감해야 하고, 아동 인권 보호기관으로서 학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훌륭한 교사는 교과목만 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인권 보호를 위해 종합적 코디네이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에게는 구체적인 학생 인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실천이 요구된다. 첫째, 학생 인권 조례 제정의 의의에 대한 것이다. 이는 인권조례가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함양’이라는 교육 목적을 모든 학교생활 영역에서 상시 학습시키기 위해 제정된 것임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헌법과 유엔 아동권리협약,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수단임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학생 인권 조례의 주요 내용에 대한 것이다. 여기엔 차별금지와 체벌 금지 등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내포돼 있다. 프라이버시 존중과 의사 표현의 자유, 참여의 권리, 권리침해로부터 구제받을 권리, 학생 인권 보장의 원칙과 한계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교사는 학생 인권을 가르치고 동시에 실현하는 주체다. 각종 학생 인권 문제가 사회 문제로 표출되는 현상은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이 나라다운 나라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학생은 학생이자 아동(만 18세 이하)이란 이중적 지위가 있다. 말하자면 ‘학교에 학적을 둔 아동’이다. 유엔의 일차적인 존재 목적은 세계시민의 인권보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으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 학생 인권은 민주주의·공화주의·국민주권주의를 채택한 대한민국의 헌법과 정체성에 맞게 존중돼야 한다. 이제 학생 인권 조례를 포함한 관련 법률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교사와 성인들의 마땅한 책임임을 직시해야 한다. 진정한 교권이란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권한임을 인식하는 것도 동시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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