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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개정 형사소송법 부작용 심각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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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지진 법무법인 리버티 대표변호사

김지진 법무법인 리버티 대표변호사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조서 등’과 관련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제312조 제1항)이 지난 1일부터 시행되면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중대한 제한이 생겼다. 기존 형사소송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작성한 조서의 증거능력을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하기 어렵다. 증거능력을 부인한다는 것은 해당 조서가 판결을 하는 데 필요한 핵심 자료로 사용될 수 없다는 의미다.

반면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이와 달리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작성한 조서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는 식으로 검사 작성 조서의 내용을 부인하면 해당 조서는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이런 변화는 검사든 경찰이든 수사 주체에 따라 조서의 증거능력에 차등을 둘 수 없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현행 형사사법시스템의 전반적인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개정 형소법 조항은 여러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검사 신문조서 증거 능력 부인돼
사기·뇌물 등 공판 진행 어려워져

무엇보다 진술 증거에 주로 의존하는 사기·뇌물 등 부정부패 사건 또는 공범이 많은 사건에 대한 공판 진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디지털 포렌식 등 과학적인 수사기법을 사용한 객관적 증거가 중심이 되는 재판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특정 사건에서는 진술증거 의존도가 높다. 그런데도 형사소송법의 졸속 개정으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의 증거능력을 일률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면 일반 형사사건보다 복잡한 경제 및 부정부패 사건을 공판 단계에서 사실상 다시 시작해야 하는 비효율이 우려된다.

다음으로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 검찰 작성 피의자 신문 조서보다 더 우월하다고 볼 수 있는지 증명력에 문제가 생긴다. 형사사법 절차의 대의는 실체적인 진실 발견이다. 형사재판에서 검찰 측은 수사검사와 공판검사가 역할을 분담하고 있어서 수사 검사는 사건에 대한 수사만을 담당하고 공판을 담당하는 검사가 관할 사건을 모아 재판에서 검찰 측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제도에서 당연히 공판검사는 수사검사보다 개개의 사건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피고인이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경우, 공판검사가 법정에서 피고인을 직접 신문해서 작성하는 조서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있어 수사검사가 작성한 조서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법원은 비교적 경미한 사건에 대해서는 신속처리 절차를 활용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검사뿐 아니라 판사도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주체로 당사자 신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담당 수사관의 증언을 포함하는 조사자 진술 제도(형사소송법 제316조 제1항)를 활용해 자신의 조서를 부인하는 피고인의 진술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려는 방안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조사자 진술의 경우 수사 담당자의 기억에 한계가 있고, 확증 편향 등도 문제가 될 수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결국 수사기관에서 더 과학적인 수사기법을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객관적인 증거를 최대한 확보해 진술증거의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피고인 신문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공판에서 양질의 진술 확보를 위해 공판검사의 역량 강화도 필요하다.

입법으로 어떠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그 제도의 도입 취지를 제대로 실현해 나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형사사법 절차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가 개정 형사소송법의 취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철저히 준비해서 실질적인 공판중심주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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