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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관음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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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위문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본 이들의 최후는 성경과 신화, 전설로 전해진다. 구약성서 창세기 19장에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는 천사들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이야기』에는 다이아나와 악티온 이야기가 나온다. 사냥을 하던 악티온이 샘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다이아나 여신을 놀라게 했다. 자신의 알몸을 보았다는 것에 분노한 여신이 악티온을 수사슴으로 만들어버린다. 악티온은 결국 자신의 사냥개들에 죽임을 당한다. 금기는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넘나들게 한다. 금기를 깨버린 순간은 달콤하지만 뒤이어 참혹한 대가가 따라온다.

중세 영국에서 탄생한 ‘레이디 고다이바’ 전설은 금기에 대한 인간 심리를 ‘관음증(voyeurism)’으로 접근한다. 마을의 영주인 레오프릭 백작은 백성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달라는 부인 고다이바의 부탁을 받는다. 영주는 “알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당신의 진심을 증명하라”고 했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거리를 돌았다. 모든 사람이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렸지만, 톰이라는 재단사는 고다이바의 나체를 엿봤다. ‘훔쳐보는 톰’이라는 뜻의 ‘피핑 톰(peeping Tom)’이 관음증을 뜻하는 속어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봐서는 안 되는 것과 꼭 봐야(알아야) 하는 것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살 수 없다.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게 됐기 때문이다.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하고, 듣기 싫은 것도 들어야 한다. 자신이 설정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구분은 타인에게 상대적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금기를 어겼다고 권선징악을 운운하는 것이 우스워졌다.

그래도 꼭 모두가 봐야만 하는 것은 있다고 우기고 싶다. 미디어는 관음증을 부추긴다. 자극적인 것에 대한 즐거움은 복잡한 사유를 해야 하는 수고를 갉아먹는다. 미국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수전 손태그는 『타인의 고통』에서 “의도했든, 안 했든 우리는 관음증 환자”라는 말을 남겼다. 대중이 지나치게 무엇인가에 탐닉한다면 언제든 손태그의 말을 되새겨봄 직하다. 미디어의 생산자가 됐든 소비자가 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