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키워준 친할머니 무참히 살해…10대 형제에게 판사가 건넨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자신을 키워준 70대 친할머니를 잔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살해한 혐의(존속살해)를 받는 10대 형제가 지난해 8월 31일 오후 대구지법 서부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자신을 키워준 70대 친할머니를 잔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살해한 혐의(존속살해)를 받는 10대 형제가 지난해 8월 31일 오후 대구지법 서부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보길 바란다."

20일 선고를 마친 대구지법 서부지원 김정일 부장판사는 고개를 숙인 채 법정에 앉아있는 10대 형제에게 책 두 권을 건넸다. 잔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키워준 친할머니를 흉기로 무참히 살해한 형제에게 실형을 선고한 뒤다.

김 판사가 형제에게 선물은 책은 故 박완서 작가의 '자전거 도둑'이다. 자전거 도둑은 박 작가가 쓴 6개 단편을 모은 소설로, 그 중 자전거 도둑 편은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어른들 속에서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날 김정일 부장판사는 존속살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A(19)군에게 징역 장기 12년 단기 7년을 선고했다. 또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과 80시간의 폭력 및 정신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범행을 도운 혐의(존속살해 방조)로 구속기소된 동생 B군(17)에게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판결했다.

김 판사는 "피해자가 비록 잔소리를 했지만, 비가 오면 장애가 있는 몸임에도 우산을 들고 피고인을 데리러 가거나 피고인의 음식을 사기 위해 밤늦게 편의점에 간 점 등을 고려하면 죄책이 무겁다"며 불편한 몸으로 두 형제를 돌보기 위해 노력했을 할머니를 언급하며 두 형제를 꾸짖었다.

그러나 김 판사는 '우발적 범행'인 점과 '교화 가능성'을 강조했다. 김 판사는 판결문에서 "할아버지는 살해하지 않은 점, 평소 부정적 정서에 억눌리던 중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정서표출 양상을 보였다는 심리분석 결과 등을 보면 우발적 범행의 성격이 더 크다"며 "부모 이혼으로 양육자가 계속 바뀌는 등 불우한 성장 환경과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보면 타고난 반사회성이나 악성이 발현됐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밝혔다.

또 "범행을 인정하며 수차례 반성문을 제출했고 동생은 잘못이 없다고 일관되게 말하는 점 등을 보면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있으며 충분히 교화개선 여지도 있어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A군은 지난해 8월 30일 오전 대구 서구 거주지에서 함께 살던 친할머니가 잔소리를 하고 꾸짖는데 격분해 흉기로 수십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A군이 범행 전 인터넷에서 범행 수법을 검색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현장에 있던 할아버지까지 살해하려다 B군이 울며 만류하자 미수에 그친 혐의도 받았다.

B군은 할머니의 비명이 외부로 새지 않도록 사전에 창문을 닫는 등 범행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두 형제는 부모의 이혼 후 지난 2012년부터 신체장애를 가진 조부모와 함께 생활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A군은 재판 과정에서 할머니를 살해한 동기에 대해 "평소 할머니가 '게임하지마라', '급식 카드로 직접 음식을 사먹어라'고 해서 싫었고, 20살이 되면 집을 나가라고 말해 불안했다"고 말했다.

앞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A군에게 무기징역을, B군에게는 장기 12년, 단기 6년형을 구형한 바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